진이늘이

이상적인 결혼상대자

본문: 창2:18, 24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2:18)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4)

한 노처녀가 결혼 상대자를 찾기 위해 결혼정보호회사를 찾아갔습니다. 소장이 상대방의 이상적인 조건을 컴퓨터에 입력시키라고 하자 노처녀는 이렇게 썼습니다. 『키는 별로 크지 않고 날마다 정장을 해야 할 것. 그리고 걷는 걸 즐기는 건장한 상대면 좋겠어요.』 곧 그런 상대의 신상명세서를 얻을 수 있다는 소장의 답변에 기대를 갖고 답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노처녀는 결과를 보고는 뒤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당신의 이상적인 상대는 팽귄입니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아니하느니라』(잠31:10-12)

최고의 상대, 완벽한 결혼에 대한 환상을 버립시다. 100점에 대한 기대에서 자유로워져야 비로소 진실한 사랑이 시작됩니다. 100점짜리 배우자는 없습니다. 100점을 기대하고 만나 1점, 2점 깎아내리는 것보다는 50점 정도에서 소박하게 출발해서 만남을 거듭하며 좋은 점을 발견하여 1점, 2점 더해가는 것이 같은 결과라도 훨씬 행복합니다.

배우자뿐만이 아닙니다. 세상 모든 일에 처음부터 100점짜리는 없습니다. 한 방울씩 채워가며 100점짜리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조금 어렵고 힘들어도 거기에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잠18:22)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아시아마켓 인텔리전스가 한국 홍콩 태국 필리핀 등 아시아권 나라들을 상대로 이상적 배우자의 조건을 묻는 전화 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배우자의 성격이 1순위로 꼽혔습니다. 성격 다음으로 경제적 안정, 외모, 지적 조건 등이 꼽혔습니다.

성격이란 타고나는 경우와 후천적으로 다양한 조건에 의해 형성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회 적응이나 신앙도 성격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잠19:1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배우자를 선택하셔서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서로 만날 수 있게 해주신다고 믿어도 되는지요?』 라고 어떤 독자 한 분이 물었습니다. 저는 『아니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믿는다는 것은 위험한 상상에 불과하겠지요.

어느 젊은이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하나님이 평소에 단순한 친구로 지내던 어느 자매와 결혼하길 원하신다는 어떤 확신을 갖고 잠에서 깨어났다지요. 그래서 이튿날 아침 그 자매를 만나 지난밤의 꿈 이야기를 하면서 청혼했더니 그 자매역시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생각하고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지난 7년간의 결혼생활은 한마디로 악몽의 세월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배우자를 선택해 놓으시고 성공적인 결혼으로 인도해 주신다고 믿는 분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충격이 될 수 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에 관심이 없으시거나 결혼을 앞에 놓고 간구하는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다는 뜻이 아니지요.

그보다는 우리 모두에게 어떤 문제를 판단 할 능력과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의 의도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결혼적령기의 젊은이들은 먼저 배우자를 위해 간구하면서 결혼생활에 필수적인 올바른 믿음과 모나지 않은 성품, 생활능력 등 자신이 준비하고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구비하는데 소홀함이 없어야겠지요. 그래서 소위 자신에게 맞는 배우자를 찾기보다는 자기 자신이 먼저 준비 된 배우자가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적 조건을 갖춘 배우자에게 매료되어 자기 마음대로 결혼을 추진하면서 『만약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으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 결혼은 막으실 거야』 라는 태도로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떠맡겨버리는 것은 참으로 잘못 된 일이겠지요. 말씀과 기도로 매일 자신을 훈련하면서 올바른 생각과 판단력을 통해 배우자를 결정하십시오. 그 믿음 속에 도우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마19:5)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지으신 후 홀로 있는 아담의 고독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갈비뼈로 아담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아내인 하와를 지으십니다. 이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담은 하와를 보는 순간,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말로 기쁨과 만족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어떤 타입의 아내를 원하느냐고 물으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대로 하와를 지었을 뿐이지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지니라』는 성경의 말씀처럼 지금도 서로 모르던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되면서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게 되는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신비스런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그토록 만족해하던 아담과 하와의 가정이 불순종의 죄로 고통스런 삶을 자초한 것처럼 오늘도 수많은 가정들이 붕괴되는 이유는 사탄의 공격 앞에 대적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주저 앉아버리는 우리의 영적 무력감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생의 배우자를 찾는 믿음의 젊은이들이 취할 태도는 하나님께서 최상의 배우자를 이미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계신다는 믿음을 갖는 일입니다. 이 믿음을 지니게 되면 세상의 조건을 찾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기웃거리는 무분별한 데이트를 버립니다. 대신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그 배필을 위해 기도하면서 가정과 가정의 만남이라는 방법을 통해 배우자를 만나게 됩니다.

이 일을 위한 부모의 기도와 적극적인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처럼 배우자의 선택에서부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맺어진 부부는 이후의 삶 속에서도 가정을 파괴하는 사단의 공격에 의연히 대적하면서 승리의 삶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고전7:3)

결혼을 앞둔 어떤 남성이 「완벽한 배우자」를 찾기 위해 온 세상을 여행했습니다. 그는 이런 배우자와 결혼하지 않고는 불행을 견딜 수 없다고 판단하고 세상 구석구석을 살폈습니다. 이렇게 40년을 허비했으나 그런 여성과는 결혼하지 못했습니다. 친구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자네의 나이 이제 70인데, 그래 세상에 그런 여성이 없었나?』『사실 딱 한번 그런 여성을 만났었네, 그런데 그녀는 "완벽한 남성"을 찾고 있었다네. 그래서 결혼이 이뤄지지 못했지』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잠31:10)

북미에 사는 어느 인디언들은 자녀들의 성년식을 옥수수 밭에서 거행한다고 합니다. 어떤 성대한 의식으로 치루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넓은 옥수수 밭으로 데리고 가서 바구니를 하나씩 주면서 옥수수 밭에서 가장 좋은 옥수수 한 개만을 따서 바구니에 담아오게 합니다. 그것이 성년식의 전부입니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 힘든 일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신나고 즐거운 일도 아닙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가장 좋은 옥수수라고 생각하는 것을 한개만 골라 따면 되는데 여기에서 두 b가지 조건이 붙습니다. 옥수수를 따기 위해 밭고랑을 한번 지나가면 다시 되돌아갈 수 없고, 또 한 번 고른 옥수수보다 더 좋은 옥수수가 나타나도 그것으로 바꿀 수가 없습니다.

​ 아이들은 좋은 옥수수를 고르기 위해 밭고랑의 시작부터 매우 신중하게 옥수수를 살피며 걸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밭고랑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면 아이들은 옥수수 한 개씩을 바구니에 담아 오는데 그들이 선택한 옥수수는 모두 별로 좋은 옥수수가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이들은 좋은 옥수수를 발견하고서도 앞으로 가면 더 좋은 옥수수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그냥 스쳐 가버렸기 때문입니다. 북미 인디언들은 옥수수 따기 체험을 통해 더 좋은 것을 찾으려고 욕심을 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우쳐 주려고 이런 체험을 성년식에 통과의례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얼굴도 예쁘면 좋을 것이고, 성격도 좋으면 좋고, 돈과 학벌도 좋으면 더 좋을 것이고,.. 이렇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좋은 배우자를 놓치는 것입니다.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고 다고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잠언 30:15)

좋은 배우자란 탁월한 배우자가 아닙니다.

자신에게 제일 잘 어울릴 수 있는 배우자를 의미합니다.

좋은 배우자는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배우자는 자신의 지성과 판단력이나 말재주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배우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좋은 배우자는 하나님의 긍휼로 가능합니다.

좋은 배우자는 진실한 기도로 가능합니다.

좋은 배우자는 신실한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좋은 배우자는 성령의 인도로 가능합니다.

좋은 배우자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합니다.

좋은 배우자는 의와 절제와 거룩과 사랑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혼자의 힘보다는 둘이 힘이 더크고 강하기 때문입니디.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4:9- 12)

결혼한 지 10년 이내의 젊은 부부들의 이혼율이 전체 이혼 가정의 50%를 차지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게 되면서 많은 부부들이 『과연 나는 올바른 배우자를 만난 것일까?』라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만남으로 시작되는 것이 결혼이기 때문에 올바른 배우자와의 만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는 홀로 있는 아담을 보시면서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창2:18)』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그를 돕는 배필을 지으십니다. 또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이 못하였느냐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지니라(마19:5, 6)』는 말씀을 통해 이미 정해 놓으신 배우자를 만나게 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말씀해 주십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배우자를 올바르게 만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배우자를 찾는 성경적 과정을 통과해야겠지요. 그래서 그 과정을 코트십(courtship)이라 이름을 붙인 사람이 있습니다.

『코트십』이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배우자를 찾고 선택하는 성경적 과정입니다. 반면에 이 코트십을 세속적으로 대체한 인간주의적 방법이 바로 오늘날 성행하는 데이트이지요. 이 두 가지 방법은 서로 상반됩니다. 코트십이 하나님 앞에서 결혼을 전제로 한 개인과 개인, 가정과 가정의 만남이라면 데이트는 많은 사람들과의 사귐을 즐기려는 낭만적인 관계에 관심을 집중시킵니다. 물론 데이트 중인 연인들도 결혼을 생각하지만 그것은 상대방의 조건에 따라 변합니다. 또한 데이트를 통한 성적 방종도 종종 심각한 문제와 상처를 야기 시키지요.

그러나 성경적인 코트십을 따를 때 무책임한 행동은 자연히 배제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정하신 배우자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와 믿음 속에서 참된 교제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겠지요. 코트십의 원리를 배우고 믿음으로 따르십시오. 그 때 비로소 배우자와의 진정한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찬송가 601장 『하나님이 정하시고』 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1. 하나님이 정하시고 때가 되어 만남으로 믿음으로 준비시켜 깊은사랑 고백하네 말씀 위에 손을 얹고 축복으로 출발하니 하나님의 크신 사랑 감사하며 찬양하세

2. 예수님의 크신 은혜 가슴마다 감동 주어 서로 다른 마음들을 이해하고 감싸 주네 아름다운 부부로서 사랑으로 하나되고 예수 믿는 귀한 언행 널리 널리 나타내세

3. 성령님의 크신 역사 믿음으로 갈망하여 우리 부부 한 맘으로 주님 뜻에 순종하네 가족 친지 교우 사랑 소망으로 세워 주고 주님 사랑 실천하여 온 세상에 증거 되리

가정이란,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녀들을 낳아 양육하면서, 서로 사랑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곳입니다. 혹 가정에 위기가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혹 견디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때, 서로의 단점을 쳐다보며 탓하기보다는, 부부로 맺어주신 하나님을 함께 바라보며 이겨내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런 가정을 하나님께서 복되게 만들어주십니다.

결혼은 새로운 가정의 탄생이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는 거룩한 연합이며, 신비한 생활의 토대이며, 행복을 창조하는 발전소입니다.

아무쪼록 천생배필을 만나 결혼하여서 혼인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독처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남녀가 만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결혼생활들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가 결혼을 하거나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인간적인 마음으로 조급히 서두르지 말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지혜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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