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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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에 관한 예화 모음



하나님의 흔적

 

학생들과 지적인 토론을 하는 것은 유쾌한 경험이다. 옛 은사의 말씀대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면서 상대방과 토론하는 것은 이웃 사랑의 학문적 표현이다. 우리에게는 서로의 의문을 토로할 자유가 있다. 기독교 신앙은 우리에게 지적인 정직성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수업 중에 하나님에 관해 의문을 품는 학생들이 종종 묻는다.

“선생님, 하나님이 정말 있습니까? 하나님이 눈에 안 보이잖아요.”

“어떨 때는 하나님을 믿고 싶어요. 하지만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확신이 생기지를 않아요. 하나님을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믿겠어요.”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보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데 걸림돌이 되진 않는다. 하나님은 피조물 세계에 속한 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가 우주 안에서 발견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나님과 우주 사이의 관계는 화가(畵家)와 그림 사이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화가가 그림을 그렸다고 하자. 화가는 그가 만든 그림의 일부가 아니다. 화가는 그림과는 구분되기에 화가의 존재는 그림 속에서 발견될 수 없다. 그림 속에서 화가를 찾을 수 없다고 해서 화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화가가 그림 속에서 발견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화가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림에 담겨 있는 화가의 흔적을 통해 화가를 유추(類推)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림에 화가의 흔적이 담겨 있듯 우주 안에는 하나님의 흔적이 담겨 있다. 우리는 우주 가운데 담긴 하나님의 흔적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기독교의 역사는..

하나님의 흔적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성경 기자들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의 그림이며 노래(사 43:21)이며, 편지(고후 3:3)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그 실마리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로마서1장 말씀중에)

 장경철 교수



아름다운 삶의 흔적

사람이 머물다 떠난 곳에는 흔적이 남는다. 결혼식이 끝난 자리에는 꽃가루가 남는다. 잔칫집에는 음식 부스러기가 남는다. 사람의 흔적은 자녀의 모습으로 남는다. 자녀는 바로 나의 흔적이다. 자녀가 믿음 가운데 잘 성장하면 그것이 바로 나의 아름다운 흔적이다. 자녀가 패역한 일을 일삼으면 그것이 나의 추한 삶의 흔적이다.


사람은 누구나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링컨은 다음과 같은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링컨, 그는 잡초를 뽑아내고 그곳에 꽃을 심다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흔적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흔적이다. 사람들이 나를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느끼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아름다운 인생이다.

오범열 목사(안양 성산교회)  <국민일보/겨자씨>



인생의 흔적

공중 화장실 벽에 적힌 글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물다 간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사람은 세상을 살다가 떠날 때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아름다운 흔적도 있고, 추한 흔적도 있다. 이웃을 위해 봉사한 사람의 흔적은 떠난 후에 더욱 빛을 발한다. 이기심과 사리사욕의 삶에 점철된 사람은 지저분한 흔적을 남긴다. 링컨은 평소 한 가지 소원이 있었다. 그는 세상을 떠난 후 다음과 같은 말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링컨, 그는 잡초를 뽑고 그 자리에 꽃을 심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가. 잡초 무성한 세속의 땅에 꽃을 심는 사람이다. 절망의 섬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머물다 간 자리가 깨끗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불순물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너무 많은 생각과 집착이 삶을 지저분하게 만든다.

오범열 목사(성산교회) <국민일보/겨자씨>



죄의 흔적

afp통신은 최근 영국에서 상습적인 절도범이 빈 집을 털었다가 그만 현관과 창문에 자신의 귓자국을 남기는 바람에 체포되었다고 보도.

25세 된 시웰이라는 범인은 집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기 위해 현관문과 창문에 귀를 바짝 댔다가 자국을 남겼다. 사건 후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은 현장조사를 하다가 창문에 남겨진 귓 자국을 발견,즉시 모양을 본떠 추적한 끝에 결국 시웰을 검거했다는 것.

「죄의 흔적」은 아무리 미세한 것이라도 반드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증명한 셈.



거룩한 흔적

서아프리카의 그리스도인들이 살고 있는 한 작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기도하는 밀실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마을 그리스도인들은 오두막 뒤 숲속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늘 기도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오두막 뒤에는 숲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러 들어가고 나가는 발걸음으로 인하여 생긴 거룩한 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열대 지방에서는 식목이 빨리 자라므로 이 길을 조금만 사용하지 않으면 잡초가 곧 무성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지나다가 그 길에 잡초가 무성한 것을 보면 근심스런 표정으로 “형제여, 그 길에 뭐가 많이 생겼군요”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이 길이 그의 신앙의 척도로 판단하게까지 되었습니다.

기도는 신앙생활의 호흡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호흡이 원활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은 신앙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건강이 좋지 않을 때 빨리 고침을 받아야지 오래 가면 갈수록 합병증이 생깁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속히 고침을 받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신앙의 건강이 한 모퉁이로부터 계속 무너져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나의 계획이 많아집니다. 기도생활을 통해 염려를 떠나보내고 마귀를 쫓아냅시다.

주님, 신앙의 건강을 되찾게 하옵소서.

당신에게는 기도의 흔적이 있습니까?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도요새의 흔적

국민일보가 최근 1만㎞를 여행한 '얄비'라는 이름의 도요새를 보도했다. 벌써 두번째. '얄비'의 여행이 목격된 사진 속 이 작은 물새의 발목에는 알록달록한 가락지가 끼워져 있었다. 가락지는 낙동강에 온 이 도요새가 뉴질랜드에서 8일 전 출발한 그 도요새 '얄비'인지를 증명해주는 표식이 되고 있었다. 가락지는 분명 얄비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확실한 신분증이기도 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얄비의 가락지 같은 표식은 무엇일까. 우리는 '천국'을 향해 가는 숨가쁜 여정 속에서 그분의 기쁨이 되어드리기 위해 흔적을 가져야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발과 옆구리의 못과 창 자국이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던 제자들에게 벅찬 증거가 되었듯 우리 삶에 감긴 고난은 무겁고 힘들지만 이 땅에서, 그리고 천국에서 바로 그 사람, 그리스도의 사람임을 확실히 하는 표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조경열 목사<아현 감리교회>   겨자씨



사랑의 흔적

[겨자씨] 

수십년 전 만주에서 20개월이 막 지난 아이 3명이 천연두를 앓았다. 의료진이 없는 가운데 두 아이는 안타깝게 죽고 말았다. 나머지 한 여자아이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얼굴에는 천연두 흉터가 남아 늘 놀림감이 됐다.


이 얼굴로 어떻게 살아가나 절망하고, 죽고 싶을 때마다 그녀는 어머니 말씀을 떠올렸다. "얘야, 이 마마자국은 하나님께서 너를 살려주셨다는 증거이고, 축복의 표시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녀의 마음속에는 확신이 뿌리내렸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주인이시며, 인생길의 인도자이심을…. 그녀는 현재 뉴욕의 유명한 한인교회 목회자의 사모로 헌신하고 있다.


외모만 생각했다면 그녀는 평생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에 하나님이 임하면서 마마자국은 사랑의 흔적과 은혜의 자국으로 바뀌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들의 인생은 승리할 수밖에 없다(골 1:11).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회협의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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