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비움에 관한 예화 모음





비누와 소금 그리고 비움

“비누는 쓸수록 물에 녹아 없어지는 물건이지만 우리의 더러운 때를 씻어준다. 물에 녹지 않는 비누는 결코 좋은 비누가 아니다. 사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마음이 없고 몸만 사리는 사람은 물에 녹지 않는 비누와 같다.”

경건한 신앙인이었던 미국의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의 말입니다. 비누는 물에 녹아져야 그 역할을 제대로 합니다. 소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음식에서 소금이 녹지 않는다면 맛을 제대로 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 죄를 정결케 하기 위해 비누와 소금처럼 스스로 녹아지면서 희생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8절은 신학적으로 ‘케노시스’의 본문이라고 합니다. 케노시스는 예수님이 자기를 비우시고 낮추셨다는 뜻입니다. 삼위일체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케노시스 사건을 통해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됐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처럼 희생하지 않으려 합니다. 비누 대신 돌덩이가 되어 우리의 자아를 내려놓지 못하고 녹지 않으려 합니다. 소금 대신 설탕이 되어 자기 맛만 내려고 합니다. 비우지 않고 채우려고만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채움은 비움을 통해 이뤄집니다. 우리의 비움으로 하늘의 영광이 드러나고 이웃이 우리를 통해 행복해지는 성탄절이 되길 축원합니다.  

한재욱 목사(강남비전교회) 

<겨자씨/국민일보>


자기 비움의 종교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말이다. “유대인들은 잔뜩 똥을 묻힌 채 뒹구는 돼지처럼 악마의 배설물 속에서 뒹굴고 있다. 이런 독충들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

루터의 증오감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아돌프 히틀러는 유대인 절멸 계획을 세웠다. 아우슈비츠의 비극은 바로 (종교적) 배타성에서 시작됐던 것이다.

배타성에 관한 진화생물학적 관점은 무엇인가. 인간은 자기 집단을 직접 관찰하고, 대화를 나누고, 다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를 듣는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자기 집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불신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유대주의와 이슬람 혐오증, 혹은 외국인 혐오증 등이 그러하다. 혈연 지연 학연 교파 등 한국사회 역시 자신의 집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증이 있다. 따라서 종교의 배타적 성격은 종교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타자에 대한 ‘배타적 혐오증’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타인의 종교를 모욕하지 말라”고 말한다. 종교학의 창시자 막스 뮐러도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고 말한다. 자기 비움의 종교(빌 2:6∼8)인 기독교가 자신의 배타성을 십자가에 못 박는 그날, 참 종교개혁은 완성될 것이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겨자씨/국민일보>



비움의 영성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부딪치는 문제들을 잘 살펴보면 모자람 때문이 아니라 지나침 때문인 경우가 허다하다. 질병도 너무 먹어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특히 현대에는 비만 자체가 큰 질병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마음의 비만이다. 끝없이 욕심을 부리지만 정작 만족은 없다.

‘부자병’이란 게 있다. 신조어로 어플루엔자(affluenza)라고 하는데, 풍요(affluence)라는 단어와 유행성감기(influenza)라는 단어의 합성어이다. 현대인들은 풍요로워질수록 오히려 더 많은 것에 욕심을 낸다. 돈, 소유, 외모, 지위와 명성을 과도하게 추구한다. 그러다 보면 오히려 불만불평을 늘어놓으며 공허한 삶을 살게 된다. 여기에 비교의식에 사로잡히기까지 하면 더욱 심각해져서 우울증이나 불안감에 빠지기 십상이다.

행복한 사람은 많은 소유나 화려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욕심이 적은 사람이다. 소유보다 욕심이 적어야 행복을 느끼는 법이다. 마음을 비우면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신령한 은혜로 행복해진다. 그러므로 마음속에서 헛된 욕심, 다시 말해서 헛바람을 빼야 한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자신을 비우시고 종의 형체로 오셔서 마지막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낮아지셨다(빌 2:6∼8). 이번 사순절에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비움의 영성을 배워 보자. 기도 가운데 자신을 살피며 마음의 군살을 빼는 영적인 다이어트를 해보자. “그들의 마음은 살쪄서 기름덩이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시 119:70)

<겨자씨/국민일보>



비움과 채워짐

숲 그늘이 이제는 하늘이 보일 만큼 넓어졌습니다. 하늘빛을 숲 그늘로 초대하려는 모양입니다. 숲은 가을빛을 받아들여 하늘이 빚는 가장 아름다운 색깔로 자신을 나타내고 싶은 모양입니다. 숲 사이로 들어온 햇살이 보여주는 새로운 모습을 발길이 닿는 곳에서부터 보게 됩니다.


가을빛은 숲의 빈 공간을 채우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하나가 떨어지면 그 자리에 상처가 남습니다. 잃어버리면 빈자리가 됩니다. 하지만 숲은 그 빈 공간을 하늘빛으로 채우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지 끝에서 아름답게 물든 단풍잎이 떨어진다 해도 안타까워하기보다는 떨어진 그 자리에 새로운 생명이 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늘빛은 우리 영혼에도 들어오기 위해 빈 공간을 마련하나 봅니다. 우리 삶에 소중한 것들이 떨어지기도 하고 자랑했던 것들이 낙엽이 되어가기도 합니다. 우리가 붙잡고 있던 것들이 떨어진 그 빈자리에 하늘빛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늘을 바라보고 서 있는 영혼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으로 채워지는 인생이 되는가 봅니다.

 

배성식 목사(용인 수지영락교회)  <국민일보/겨자씨>



비움과 채움

하루는 무디 선생이 설교를 하다가 손에 빈 컵을 들고 말했습니다. “이 컵에서 공기를 하나도 남김없이 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사람들은 공기펌프로 빼야 된다느니 하며 여러 가지 방법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때 무디 선생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 컵에서 공기를 빼면 진공상태가 되어 컵이 깨져 버립니다. 컵이 깨지지 않게 공기를 제거하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공기 대신 다른 것을 채우면 됩니다.”

그러면서 주전자를 들고 컵에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마음속에 모든 죄를 자복하고 회개를 하고 새사람이 되어 살려고 해도 그것이 결국 작심삼일로 끝나고 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음을 깨끗이 비우기는 했지만, 그 안에 다른 어떤 것을 대신 채우지 않았기 때문에 깨져버리는 것입니다. 비어진 마음에 예수님을 모셔드리면 큰 은혜와 능력이 임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채우십시오.

주님, 예수님의 마음으로 채우게 하옵소서.

비어있는 마음에 사단이 들어오지 못하게 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비움으로 채워지는 것

“아무도 몰라. 며느리도 몰라!” 이런 광고카피가 유행한 적이 있다. 요리사들은 자신만의 특별한 소스나 요리법을 죽을 때까지 비밀로 간직한다고 한다. 자신의 경쟁력을 독점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김영모 과자점 사장은 반대의 길을 걷는다. 그는 책을 통해 자신만의 조리법을 공개하기를 즐긴다. 어리석은 듯이 보이지만 김영모 사장은 공개의 유익을 간파하고 있다. 더 이상 자신이 특별하지 않기 때문에 안주함의 자리를 털고 새로운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비법을 끌어안고 있을 때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기술을 만나게 된다. 이렇듯 애지중지하던 것도 버릴 때 새로운 것으로 채워지고 더 나은 존재가 된다.

현대 자본주의를 살고 있는 우리는 높이 쌓아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탐욕을 부린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버려야 할 때가 있다. 특히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지상적이고 정욕적이고 죄악적인 것을 반드시 내버려야 한다.

사순절이다. 하늘이 주시는 좋은 것을 얻기 위해 빈 공간을 만들어 보자.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약 1:17).

<국민일보/겨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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