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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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품 오래참음

5:22-23, 5:7-11

 




 

I. 한국인들의 조급증

 

 

 

저희들 학창시절 국어교과서에 은근과 끈기라는 장이 있었습니다. 구한말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성품이 은근과 끈기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세계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은 "빨리빨리", "조급증" 일 것입니다. 자판기에서 커피가 다 나오고 불이 꺼지면 컵을 꺼내야 하는데 한국인은 버튼을 눌러놓고 컵을 붙들고 있습니니다. 가끔은 튀는 커피에 손을 데기도 하지요.

 

 

 

한국어 중에서 가장 발달된 말 중 한 가지가 조급증을 드러내는 단어들입니다. 빨리 빨리, 날쌔게, 얼른, 금새, 당장, 성큼, 선뜻, 후딱, 속히, 즉시, 신속하게, 잽싸게.

 

예부터 미니스커트와 설교는 짧을수록 좋다는 농담이 있는데 그 말은 긴 설교는 참아주지 못하겠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조급증이 신앙생활에서도 나타납니다. 기도는 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응답을 기다리지 못합니다. 교회생활 중 조그만 갈등이 있으면 견디지 못합니다. 누군가와 관계가 어려워지면 회복시킬 생각을 안하고 교회를 떠나버립니다. 신앙생활을 도깨비 방망이처럼 생각합니다. 전도를 하면서도 너무 쉽게 포기합니다.

 

 

 

탈무드에 아브라함에 관한 이야기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마당을 쓰는데 한 나그네가 지나갑니다. 온 몸이 땀에 젖고 시장해 보여 집안으로 불러 시원한 우유와 빵을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빵과 우유를 먹기 전 감사기도를 하지 않고 먹습니다.

 

"당신은 왜 감사기도를 하지 않습니까?"

 

"나는 페르시아 사람입니다. 불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이지요. 하나님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은 천지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밥을 먹을 때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합니다."

 

그래도 자신은 불을 숭배할 뿐이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감사기도를 할 필요가 없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난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쫓아내 버렸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은 우리 집에 쉬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떠나는 나그네의 뒤통수를 쳐다보며 분을 삭히고 있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종아, 하나님은 저 한 사람을 위하여 50년 동안 참고 참았거늘 한 시간도 참지 못하고 쫓아내는구나."

 

불신자 전도를 위한 가장 소중한 성품 가운데 하나가 인내, 오래 참음입니다.

 

 

 

II. 오래 참음의 반대말 - 원망

 

 

 

오늘 본문 야고보서 57-11절까지 다섯 절 가운데 오래 참음과 관계된 단어가 여섯 번이나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자어의 참을 인()자는 마음심()자 위에 칼도()자를 쓰고 있습니다. 참는다는 것은 "칼로 마음을 베는 것처럼 아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래 참음은 고통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참는다"는 말이 반복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참는다"는 말과 반대되는 말이 무엇일까요? 9절에 있는 "원망"이란 단어입니다.

 

오늘 본문 "오래 참음"의 배경이 되는 말씀이 바로 앞 구절 51- 6절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이런 내용입니다.

 

어떤 부자가 자신은 한없이 사치하고 방종하면서 가난한 일꾼들의 정당한 삯을 주지 않았습니다. 일꾼들의 시간, 노동, 품삯을 갈취하여 원망을 사게 된 것입니다. 이에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원망을 하자 하나님이 그를 달래시며 "길이 참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물질 때문에 원망 살만한 일을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부자가 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물질이 내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더구나 일꾼의 품삯은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릴 십일조도 내 것이 아닙니다. 물질을 풍성히 얻어 부요함을 누리되 물질을 얻는 과정에서 잃지 말아야 할 것들, 희생시키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건강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입니다.

 

가족을 희생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을 희생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돈과 영혼을 바꿔서는 안됩니다.

 

타인을 희생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타인의 눈물로 먹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물질을 잘 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잘 쓰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이웃의 것을 빼앗지 말고 이웃을 위해 선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최소한 원망 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돈 남의 돈 떼먹지 말라는 겁니다.

 

사람들이 명예의 훼손하고 물질의 손해를 보게합니다. 감정이 다칩니다. 그럴 때 제일 먼저 터져 나오는 것이 원망이지요. 그러나 성경은 바로 그 상황에서 원망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9절에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특히 인내가 부족한 사람의 특징이 쉽게 원망하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면서 걸핏하면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지도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일이면 지나갈 광야를 유리, 방황, 고생하며 40년을 헤매었습니다. 원망, 불신으로 지은 죄에 대한 댓가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지 못한 댓가입니다.

 

 

 

세상에 죄가 허다하게 많지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 원망입니다. 우리 인간들 가운데 가장 뿌리가 깊은 죄, 가장 오래된 죄가 원망 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준 선악과를 먹고 그 불순종을 추궁당하자 당신이 만들어준 여인이 먹으라 해서 먹었습니다 하고 사랑하는 아내를 원망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잠언 193절은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말씀합니다. 원망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미련한 인간들의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III. 오래 참음은 하나님의 성품

 

 

 

오래 참음은 무엇입니까? 버튼(E.D. Burton)이라는 성경 주석가는 오래 참음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억울한 상황, 곤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확고히 신뢰하고 기다리는 삶의 태도이다.

 

성경에서 오래 참음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로마서 922"하나님은 오래 참음으로 관용하신다" 베드로전서 320"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신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래 참으신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믿음의 영웅들은 모두 오래 참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히브리서 612"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으라"

 

야고보서 510"선지자들이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성령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어떤 성품이 우리 안에 납니까? 오래 참음의 성품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지요.

 

에베소서 42"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

 

골로새서 312"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어떤 성도가 오래 참지 못하고 걸핏하면 원망하고 분노를 터트렸습니다. 목사님이 심방 가서 "성도님 오래 참으십시오. 분노를 터뜨리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권면했답니다. 그런데 이 성도가 하는 말 "저는 분노를 잘 터뜨리지만 성격이 아쌀해서 뒷끝이 없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성도님, 엽총도 그렇습니다. 한방이면 끝나지요. 오래 안걸립니다. 그러나 그 결과의 아픔은 오래 갑니다. 쏜 당신은 뒤끝이 없지만 쏘인 사람은 오래 갑니다."

 

 

 

IV. 화평케 하는 자

 

 

 

성령의 사람이 가지는 오래 참음의 열매가 어디서 나타나게 될까요? 우리가 오래 참을 때 그 열매를 어디서 맛 볼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을 향하여 오래 참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자기 자신을 향하여 오래 참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오래 참아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향하여 오래 참는다는 것이 무엇 말일까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신뢰하고 참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신뢰하고 참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억울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에 여전히 악과 부조리가 있고 모든 일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악인이 성공하고 형통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선한 사람들이 손해를 보고 억울한 일을 겪을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때 불평을 터뜨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성경은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인하여 투기하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여호와께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선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됩니다.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은 가장 정확한 때에 가장 정확한 일을 하신다고 믿고 그 분을 신뢰해야 합니다. 때로 내가 기대했던 때와 하나님이 일하시는 때가 달라도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시간이 지난 다음에 뒤를 돌아보면 언제나 하나님이 정확한 때에 정확하게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옳았습니다.

 

 

 

사울왕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제사를 지내고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고 전쟁터에 나가야 되는데 사무엘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는 겁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조급증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가 제사를 드리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인해 사울왕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왕좌가 그 가문으로부터 다윗 가로 넘어갑니다. 사울은 하나님 앞에 신실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믿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자기 자신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조급증에 시달리는 지도자였습니다. 이런 성품은 왕으로서 자격 미달입니다. 그런 연유로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신 것입니다.

 

 

 

두 번째 나 자신을 향하여 오래 참는다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나 자신의 부족함을 참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 번의 실패를 영원한 실패인 양 낙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번의 실수가 자신의 모든 것인 양 절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큰 나무도 처음엔 작은 싹에서 시작됩니다. 자라고 잎이 피고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인격이 성숙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신앙이 성장하는 것도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인내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참아야 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성내지 않으며 모든 걸 참으며 모든 걸 견디느니라.

 

어버이가 된 사람들은 자녀를 향하여 오래 참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의 조급증과 지나친 기대 때문에 자녀의 성품이 무너집니다. 그들 인생의 비전과 재능이 무너집니다.

 

예수님이 붙잡힐 때에 베드로가 칼을 뽑아 말고의 귀를 잘랐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에 칼을 뽑아 대제사장 시종의 귀를 잘랐으니 얼마나 용감하고 씩씩합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책망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거스리는도다." 하나님의 큰 역사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성급한 분노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세상을 정죄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을 베드로는 몰랐던 것이지요.

 

시편 377절입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V. 어떻게 오래 참을 수 있는가?

 

 

 

그러면 어떻게 오래 참을 수 있습니까? 어디서 그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세 가지 시청각 자료를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첫째 7절에 농부의 인내로부터 배우라고 말씀합니다.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 못 참으면 열매를 거두지 못합니다. 가뭄과 홍수를 참아내지 못하면 병충해 공격을 참아내지 못하면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면, 조급증에 시달리면 열매를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희들 어렸을 때 보리고개를 지내다 보면 먹을 것이 떨어집니다. 덜 익은 보리알이나 벼알을 베어다 삶아서 껍질을 벗겨서 밥을 해먹곤 했습니다. 고구마가 잘 크면 머리통 만할텐데 영글기도 전에 손가락만한 고구마를 캐다 삶아 먹습니다. 또 덜익은 감을 따서 먹습니다. 텁텁하니 맛도 없습니다. 감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해서 그 떫은 감을 먹는 것입니다. 정작 가을이 되면 열매를 거두지 못합니다. 참고 기다리는 농부로부터 오래 참음을 배우야 합니다.

 

사람을 키우는 것도 농사짓는 것과 같습니다. 자식 농사라 하지 않습니까? 꿈을 심고 기도를 심고 거두는 것도 농사짓는 것과 같습니다. 내 신앙이 자라고 성숙한 것도 농사짓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에게 너무 쉽게 실망하지 마십시오. 꿈과 기도의 응답이 지연된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내 남편, 내 자식 신앙이 더디 자라는 것 같다고 조급해 하지 마십시오. 문제는 바로 여러분이었습니다. 오래 참지 못하는 것, 기도하고 오래 참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래 참고 기다리면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실 것입니다.

 

 

 

둘째는 10잘에 고난과 핍박 중에서도 오래 참음으로 말씀 증거를 성공적으로 감당했던 믿음의 선진들을 보고 배우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노아는 비가 오지 않는 가운데서 사람들의 비웃음을 참아내며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다윗은 왕으로 기름 부으심을 받고 7년을 쫓겨 다니며 오래 참았습니다. 요셉은 꿈을 이루기까지 온갖 모함과 수난을 견디어 14년을 오래 참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데 25년을 참아야 했습니다. 모세는 히브리서 1127절의 표현대로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보이는 것 같이 하여 참았느니라" 몇 년 동안을- 40년을! 안나는 메시야를 만날 약속을 받고 84년을 성전 안에서 기도하며 오래 참았습니다.

 

 

 

오래 참음의 대가 한분이 계십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님입니다.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12:2)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무슨 얘기입니까? 당신이 구원받는 그 기쁨! 내가 하나님의 자녀된다는 감격! 우리 모두가 하늘의 백성이 된다는 그 기쁨 하나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발가 벗기움을 당하신 것입니다. 내가 당해야 될 온갖 부끄러움과 수치와 창피를 다 당하신 것입니다. 가시관 면류관을 쓰시고 손과 발이 못에 박히셨습니다. 그 처절한 고통을 기뻐함으로 참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오래 참음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주신 분이십니다.

 

 

 

세 번째로 11절에 야고보는 욥의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인내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축복된 결말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은 고난당하고 시련당하고 있지만 반드시 내 인생의 결말은 좋아지게 될 것이다. 주께서 결말을 보게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극한의 고난에서 욥은 참아냈습니다. 욥으로부터 지혜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챨스 코오만이라는 여사의 글 중에 재미있는 체험담이 있습니다. 애벌레 한 마리가 나방이 되어서 나오는 것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누에고치에 조그마한 구멍을 내더니 그곳을 빠져나오려고 온갖 몸부림을 하는 것입니다. 더듬이가 하나 나오더니 날개죽지가 조금씩 비집고 나오는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고치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저러다 죽겠다 싶어서 조그마한 구멍을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 나방이 고맙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내밀고 날개를 내밀고 허리를 굽히면서 비집고 나왔습니다. '그래 그래 내가 선심을 썼으니까 하늘을 날겠구나.' 바라보고 있는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날줄을 모릅니다. 몸집은 너무 크고 날개는 너무 작고. 이리 뒤뚱 저리 뒤뚱 방바닥을 뒹구는 달싹둥이 칠싹둥이가 된 것입니다. 챨스 코오만의 조급증 때문에 한 나방의 생애를 망쳐 버리게 된 것이지요.

 

 

 

오래 참는 그 기간은 의미없이 힘들기만 한 기간이 아닙니다. 내가 하늘을 나는 믿음의 날개를 다는 기간입니다. 지금 고난의 터널을 빠져 나오지 못하여 안타까이 울고 계신 분 계십니까? 지금 당신이 당하고 있는 고난의 시간, 더 참고 참아야 하는 고통의 시간, 의미없이 흘러만 가는 시간이 아닙니다. 믿음의 창공을 날기 위하여 주님께서 믿음의 날개를 달아주고 계시는 시간입니다. 참으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좋은 결말을 보게 될 것입니다.

 

 

 

VI. 주께서 주시는 아름다운 결말을 본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마지막 말씀이 11절에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입니다. 주께서 마지막 결말을 해피 앤딩으로 아름답게 만들어 주신다는 믿음입니다. 세상이 불합리해 보여도 의인이 고통을 당하는 것처럼 보여도 악인들이 형통한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심판하신다. 심판주가 문앞에 와 있다. 깜짝 놀라만한 시간에 네 인생은 해피 앤딩으로 마치게 될 것이고 악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존 매칼은 지질학을 공부하고 석유 탐사대에서 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석유가 나오지 않는 폐광을 샀습니다. 자기 재산을 다 팔았습니다. 가족들로부터 돈을 다 모았습니다. 친구들로부터 많은 빚을 냈습니다. 기계를 사 폐광촌에서 석유를 개발하는데 1m 2m... 200m 를 파 내려갔습니다. 1년이 걸리고 2년이 걸리고 수년이 걸렸습니다. 이자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일꾼들도 다 떠났습니다. 빚쟁이들이 독촉을 합니다. 살 길이 없었습니다. 캄캄한 인생의 골목에서 이제는 죽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엎드려 마지막 죽기 전에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혼자 고통당하는 것은 얼마든지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친구 내 가족이 고통가운데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내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정상 일보 직전에서, 성공 일보 직전에서 포기한 성공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래 한번 더 파 보리라!’ 석유 탐사하는 곳에 와서 20m를 더 파 내려갔을 때에 하루에 12,000 배럴의 엄청난 석유가 터져 나와 세계적인 갑부가 되었습니다.

 

 

 

어린 새싹이 메마른 대지를 밀고 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오래 참기만 하면 하나님은 소년을 어른으로 만드시고 죄수를 선한 시민으로 만드시고 절망으로 포기한 알콜 중독자를 성도로 만드실 것을 나는 믿노라.

 

나는 태양이 빛나지 않을 때에도 구름 저 건너편에 태양이 있음을 아노라.

 

나는 하나님이 침묵을 지키실 때에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노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기에 오늘 우리는 참을 수 있습니다.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결말을 선하게 보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당신의 인생은 반드시 해피 앤딩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시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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