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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설교말씀자료

나를 살펴보시는 하나나님 시편139 :1~7

by 진이늘이 smjin2 2019. 11. 20.

나를 살펴보시는 하나나님

시편139 :1~7

 


 

할렐루야. 오늘 말씀의 제목은 "나를 살펴보시는 하나님"입니다. 시편 1391절로 7절 말씀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눕니다. 제목을 한번 따라해 주십시오. "나를 살펴보시는 하나님"

 

우리의 신앙생활은 예수 믿는 그 출발부터 하늘나라 갈 때까지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 우리 마음 가운데 성령이 오신 것을 성령의 내주하심이라고 합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 가운데 거하시고, 그리고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 말씀 보며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믿음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평생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살다가 이 땅에서 모든 우리의 삶을 마치고 소임을 마치는 그 순간 우리는 저 천국에서 주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과 근본적인 차이는 그 마음 가운데 성령님이 계시냐, 계시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도 이 사람이 초보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느냐 아니면 믿음이 성장한 사람이냐 그 차이는 그 사람이 성령충만하냐?, 성령충만하지 않느냐?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예수님과 세상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가 자꾸 세상 유혹에 넘어가서 실수하고 잘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에 멈추지 말고 성령충만 받아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나를 아시는 주님

 

오늘 시편 139편에서 우리에게 주신 3가지 은혜의 말씀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주님이 나를 아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주님이 나를 잘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1391절에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안다고 하는 말이 2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지식적으로 내가 누구를 아는 것, 내가 김 선생님을 알고 박 선생님을 알고 그분의 배경을 알고 그분의 집안을 아는 그런 지식적인 아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여기서 "나를 아시나이다" 하는 표현은 그 안다는 것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경험적으로 체험적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말로 "야다"라고 합니다. "야다"라고 하는 말은 부부가 하나 되어서 서로를 잘 아는 것 같은 그런 친밀하고 깊숙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잘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우리의 생각도, 우리의 걱정도, 우리의 상처도, 우리의 슬픔도, 우리의 질병도, 우리의 문제도 속속들이 잘 알고 계십니다. 주님이 나를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감정까지 이해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주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문제와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1392절에서 4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연약함과 우리의 죄와 허물을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람이 상대편의 허물을 보고 문제를 보면 가까이하기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돌아서서 비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반대로 사람들이 우리에게 돌팔매질을 할 때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를 꼭 안아주시는 사랑의 주님이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힘씁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학생이 교사에게, 직장인은 그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직장에서 상사가 그를 잘 보는 것은 그가 일을 잘해서 이용가치가 있어서 그를 인정해주시는 것이지 그 이상은 아닙니다. 일을 못 하고 자꾸 실수하면 내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도, 실수와 부족과 허물을 아시고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주님의 은혜에 우리는 한평생 감사하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주는 기쁨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주님의 기쁨은 영원한 것입니다. 사람이 우리를 인정해주고 높여주는 것은 우리가 어떤 일을 잘하고 거기서 어떤 좋은 업적을 남겨 놓을 때 인정하는 것이지 우리가 우리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디서도 실수만 하고 잘못된 모습만 보이면 다 등을 돌리고 우리에게 비난의 돌을 들어 던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내 모습 이대로 부족해도, 연약해도, 상처투성이라도, 혼자 잘나가고 교만해도 그래도, 그래도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에 감사해야 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내가 무엇이관데 나를 이렇게 사랑하셔서 내 모습 이대로 그대로 사랑하시고 품으시고 나를 인도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2. 나를 보호하시는 주님

 

나를 아시는 주님께서 둘째로 나의 일생을 보호해주십니다. 나의 일생을 보호하시고 나를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1395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공중의 매가 떠서 빙빙돌면 암탉이 구구구구해서 병아리를 다 모아 자기 암탉 날개 아래 다 품습니다. 이와 같이 사탄이 매와 같이 돌면서 우리를 공격할 때 주님이 우리를 품에 안으시고 우리를 보호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인심은 잘 될 때는 줄을 서지만 잘못될 때는 돌을 던지는 것입니다. 대통령으로 뽑을 때는 언제고, 돌아서서 탄핵할 때는 언제고 참 우리 마음이 그렇습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바뀐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나는 의롭고 저 사람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이중잣대 때문에 갈등이 있고 상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여전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아시고 나를 꼭 그 품에 안아 보호하시고 우리의 일생을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셨습니다. 430년 종살이하는 동안 애굽에서도 그를 지켜 주시고 그곳에서 해방되어 나와 40년 광야 길을 갈 때 그들을 보호해 주시고 가나안을 정복할 때도 그들과 함께하여 주셔서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물리칠 수 있게 해주시고 보호하시고 함께하여 주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주님이 도와주지 아니하셨더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역사 가운데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많은 시련 속에서도 주님이 보호하시고 그들을 이끌어 주셨던 것입니다.

 

시편 1353절로 4절은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

 

특별한 소유로 택하여 우리를 품으시는 주님의 은혜에 우리는 감사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겼습니다. 영적으로 타락했습니다. 멀리, 멀리 딴 길을 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징계의 채찍을 때리시고 또 때리시다가 결국에는 이웃 나라를 들어서 그 나라를 심판하시는데, 주전 721년에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주전 586년에 남 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합니다.

 

그러나 멸망을 당해 포로로 끌려갔어도 70년 동안 저들을 보호하셨다가 다시 저들을 인도하여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의 일생이 가도록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며 우리를 도와주시는데 이사야 463, 4절에 놀라운 고백이 나옵니다.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할렐루야. 우리가 엄마 뱃속에서 "응애." 태어나는 그 순간 주님이 우리를 안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안으셨습니다. 태어나서 제대로 걸음마를 떼지 못할 때 요즘은 유모차가 있지만 그 때는 다 등에 업었지 않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등에 업으셨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등에 업힌 아이가 얼마나 행복합니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등에 업혀서 한평생 성경에 보면 백발이 되기까지 주님이 우리를 돌보셨다고, 돌보신다고, 돌보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도 돌보신 주님이 오늘도 돌보시고 내일도 돌보실 것입니다. 성경은 백발이 되기까지,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고 너희를 안고 너희를 업고 가리라.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버리고 떠나도 주님은 절대로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인정은 잠깐입니다. 내가 뭘 가졌을 때, 잘 될 때는 주변에 사람이 많죠. 어느 분이 그러더라구요. 가장 절정기일 때, 내려올 줄 알아야 한다고.

 

유명한 독일의 피아니스트가 한 분 있었는데, 너무 그 연주를 잘해서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았어요. 그런데 그 어느 날 그 절정에서 그만 피아노 협연을 하다가 평생 하지 않는 실수를 하게 됐어요. 왜 실수를 했는지, 본인이 자만해서 실수를 했는지, 긴장해서 실수를 했는지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 다시는 연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교회 나와서 신앙을 갖고 믿음을 회복한 후에, 그 후로는 교회 반주로 봉사하였지 다시는 세상 무대에 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이 실수를 했다고 다 고개를 돌려도 "아니야! 나는 널 사랑해, 여전히 널 사랑해! 그 한번 실수 가지고 왜 그래? 한번 잘못한 것 갖고 왜 그래? 내가 널 업고 간다니까! 앉아있을 힘도 없고, 걸어갈 힘도 없지? 내가 업고 갈게."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보시니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이 주님이 한평생 우리와 함께하시고 동행하십니다.

 

 

 

3. 주님과 동행하는 삶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편 1397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일생 다가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동행이라고 하는 것은, 함께 하는 것이고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이고 대화하고 교제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가시기 바랍니다.

 

에녹은 365년 동안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가서 주님이 너무 그 삶이 주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의 삶이었기 때문에 "너는 더 이상 이 죄악 세상에 있지 마라." 그냥 부르셔서 천국에 데려가셨습니다. 그러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524절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하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그것을 히브리서 115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

 

365년을 주님과 함께했습니다. 에녹의 시대는 죄가 범람한 시대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에녹이 창세기 524절에 등장하잖아요, 6장에 보면 홍수 심판해서 사람들이 다 멸망 당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에녹 4대 후, 4대 만에 온 세상이 홍수 심판을 받고 멸망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죄악이 만연한 세상에서 에녹은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하나님과의 동행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에 있습니다.

 

교제가 무엇입니까? 펠로우쉽, 나누는 것입니다. 대화를 나눠야 됩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도 일주일만 얘기 안 해보세요. 멀어집니다. 가까운 사람은 그저 하루가 멀다하고, 아니 한 시간이 멀다 하고 계속 연락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 가까운 사람이니까.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여러분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 아침에 눈을 뜰 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오늘도 주님 나와 동행하여 주옵소서. 오늘 거룩한 주일입니다. 예배드리며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시고 은혜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오늘 내가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 사람들과 만날 때 만남이 주님 가운데 아름다움 만남이 되게 하여 주시고 나의 말하는 하나하나가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고 감동을 주는 사랑의 말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권면의 말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부르짖는 기도가 간구입니다. 기도와 간구를 내게 드리라 하나님 말씀하셨습니다. 늘 주님과 동행하며 기도하고 부르짖어 간구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가운데 늘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까?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면 이 말씀에 있는 메시지가 그때그때 내게 필요한 음성으로 들려오는 것입니다. 절망하여 낙심하고 쓰러질 때 "강하고 담대하라!" 주님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두려워 떨며 불안하여 잠을 자지 못할 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니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새 힘을 얻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은 때때로 외롭고 힘들고 어려운 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은 크고 넓은 길입니다. 아무나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악의 홍수에 떠밀려 가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고 주님과 동행하려면 십자가를 지고 험한 길이라도 묵묵히 주님을 따르며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예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나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 감동받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저 사람 역시 예수 믿는 사람이 다르긴 다르구나!" 할렐루야

 

달콤한 죄의 유혹을 성령충만해서 물리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어떤 삶의 도전이 다가와도 성령충만해서 말씀의 검을 들고 물리치기 바랍니다. "흑암의 권세는 물러갈지어다! 질병은 떠나갈지어다! 나를 괴롭히는 이 고통의 모든 흔적들은 떠나갈지어다! 상처는 치료받을지어다!" 담대하게 외치시길 바랍니다. 주님만이 오직 주님만이 나의 모든 문제를 아시고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어떤 의술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병도 주님이 고쳐주시고 그러한 문제도 주님이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면 그 삶이 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베스트셀러에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케이티 데이비스의 책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번역됐죠? "그래도 소망"이라고 하는 책까지 두 권이 번역되었는데 2006년도 케이티 데이비스는 18살 때 아프리카 우간다로 갑니다. 우간다로 갔다가 그곳 사람들의 비참한 삶을 보고 "주님 내가 저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는데 나의 일생을 바치기 원합니다." 하고 돌아와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19살의 나이로 우간다로 갑니다. 그곳에 가서 그녀가 한 사역은 빈민촌에 있는 고아원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102명의 아이들을 섬기면서 유치원 교사가 되어서 고아의 보모가 되어서 저들을 헌신적으로 섬깁니다.

 

여러분, 이 문명 시대에 살고 있다가 그 환경적으로 원시시대와 같이 어려운 곳으로 가면 먹을 물도 오염됐죠, 먹을 것도 없죠, 벌레들은 얼마나 많은지 세상의 벌레들이 다 거기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들이 씻지를 못하니깐 아이들이 다 더럽죠, 병이 들어있죠, 병이 들어도 약이 없으니 고름이 곪고 그 말할 수 없는 아이들을 일일이 다 돌봐주며 사랑으로 그들을 섬겼습니다. 주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묵묵히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 19살 된 자매들 다 불러다가 가겠다고 손들라고 하면 몇 사람 손들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주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섬겼습니다. 집이 무너져서 다친 세 명의 자녀들을 어린 애들을 입양으로 시작해서 우간다 애를 10명 더 입양해서 13명을 돌보고 있습니다. 13명을 돌보고, 다 저 자녀들이에요. 거기에 있는 아이와 거기에 있는 분과 결혼해서 아이가 하나 태어나서 14명의 엄마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수백 명의 홀로된 어머니를 돕는 '아마지마'라고 하는 선교단체를 만들어서 '아마지아'라는 말은 소말리아어로 진실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묻습니다. "아니, 그 우간다에서 그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그 어렵고 힘든 상황을 견딥니까? 위험할 텐데요. 무섭지 않습니까?" 그때 그는 이와 같은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많은 명령을 하셨지만, 그중에서 안전하게 살라는 명령은 없었다. 예수님은 우리를 안전한 삶으로 부르신 적이 없다. 대신, 위험한 순간에도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손안에 있는 것만큼 안전하고 좋은 곳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꽃길 대신 '예수'를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늘 주위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또 멀지 않은 곳에서 계속 총소리가 울려 퍼지고 사람들이 죽고 죽이고 하는 그 위험한 환경 속에서도 지금도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주님의 선하신 인자하심이 그녀의 삶을 돌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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