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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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예화 모음




[겨자씨] 처음 걷는 소망의 길

 

 

디자이어 패스(Desire Path)’란 말이 있다. 직역하면 갈망의 길이다. 이 문구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나 동물이 자주 다녀 생긴 작은 길을 뜻한다. 원래 길이 아니지만,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계속 다녀서 생겨난 오솔길처럼 말이다.

 

보통 이런 길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 사이의 최단거리일 가능성이 크다. 최대한 빨리 가려다 보니 지름길이 생긴 것이다. 누군가는 요령을 부린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처음 누군가 그 길을 가지 않았다면, 더 중요하게는 반복적으로 지나다니지 않았다면 애당초 길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 길로 뒤에 오는 사람이 유익을 얻게 됐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서의 갈망은 그저 빨리 가고자 하는 마음이라기보다 가고자 했던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열정으로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마음의 소망은 품었더라도 인적 없는 수풀 앞에서 그저 멈췄더라면 길은 생겨나지 않았을 터다.

 

누군가 한 번, 두 번 같은 길을 반복해 다니면서 작은 오솔길이 생기고 뒤에 오던 또 다른 누군가가 그 혜택을 입게 된 것 아닐까. 지금 어떤 소망을 품고, 어떤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가. 그 작은 몸짓이 내 뒤의 이들에게 방향과 속도를 더해줌을 기억하자. 초행길이라도 기쁨과 소망의 걸음이 될 것이다.

 

김민정 목사(좋은목회연구소)

<겨자씨/국민일보> 소망 예화

 

 

부활의 소망

19세기 초 우리나라에서 갑신정변이 일어나 매우 혼란스러웠을 때 국 제적으로 당시 조선은 위험하고 어두운 황무지였습니다.

위험을 각오한 선교사들도 조선으로 오기는 꺼려할 정도였는데, 두 명의 미국 선교사가 담대하게 지원을 해 떠났습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라는 두 미국인 선교사는 정확히 1885년도 4

 

5, 부활절에 인천 제물포항을 통해 우리나라에 도착했는데 처음으로 이 땅에 복음이 전해지던 순간이었습니다.

순교를 각오하고 떠나온 두 선교사는 본국으로 보내는 첫 선교보고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우리는 부활절에 이곳에 왔습니다. 죽음을 이겨내고 부활하신 주님 께서 이 땅의 결박도 끊어주시고 많은 사람들을 빛과 자유의 세계로 인 도해주시기를 저희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믿음을 죽음에 굴하지 않고 복음에 헌신하게 합니다.

 

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에게도 복음이 전달될 수 있었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이시기에 어두운 나의 삶에도 살아있는 소망이 생길 수 있었습니다.

날 위해 죽으시고 날 위해 부활하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부활의 믿음으로 새롭게 시작할 힘을 얻으십시오. 반드시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주님! 부활의 복음을 가슴 깊이 체험하며 살게 하소서!

공관복음에 나오는 부활의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소망 예화

 

 

한 가지 소망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은 약 13년 동안 미국인들의 업무 의욕에 대해서 조사를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70%의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 매우 낮은 의욕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30%의 사람들은 능동적으로 일을 하며 높은 생산성을 올리는 부류였는데, 이들에게는 다양한 차이점이 있었지만 가장 뚜렷한 것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한 가지 이상의 소망이 있는가, 없는가라는 차이였습니다.

토마스 칼라일은 인간은 희망에 기초를 둔 존재이며 모든 것을 빼앗긴다 해도 한 가지 희망만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희망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에 희망을 가졌는지입니다.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은 서른 살이 되던 해에 다음과 같은 일기를 썼습니다.

내 나이 서른,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한 나이입니다. 나 역시 오늘부터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살겠습니다.”

서른 살의 나이팅게일은 주님을 통해 인생의 소망을 가졌고, 그 소망으로 인해 아름다운 삶을 살았습니다. 내 삶을 유지하고 있는 궁극의 소망은 오로지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유일한 목표인 주님에게 참된 소망을 품으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주님을 향한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삶이 되게 하소서!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주님이 주시는 소망의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카잘스의 소망

 

세계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가 아흔다섯살이었을 때 기자가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로 손꼽히는 분입니다.그런 선생님께서 아직도 하루에 6시간씩 연습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카잘스는 활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왜냐 하면 지금도 제가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은 75세에 순례의 길을 떠났다. 모세는 애굽에서 신음하고 있던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80세에 부름을 받았고 120세에는 자기 민족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갈렙은 85세에 공격부대의 지휘관이 되었으며 욥은 노년에 새로운 가문을 이루었다. 나이나 환경이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노인이라도 자신에게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기억하고 노력하는 자에게는 소망이 주어지게 된다. 소망의 사람은 숙명론을 극복한다. 그는 모든 것을 하늘이 주신 기회로 알고 활용하기에 환경이나 시대가 자기의 기회를 앗아가지 못하게 한다.우리의 이 땅이 다시금 소망의 땅이 되기를 꿈꾸어본다.

 

한태완<예화포커스>소망 예화

 

 

소망은 생명

 

샤르니라는 한 프랑스인이 나폴레옹 황제에게 밉게 보여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는 친구들에게서 잊혀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주 면회를 오던 가족들도 점점 멀어졌습니다. 그는 너무나 쓸쓸했습니다. 그는 돌 조각으로 벽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

소망을 잃어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옥 바닥에 깔려 있던 돌 틈에서 푸른 싹 하나가 고개를 들고 나왔습니다. 샤르니는 간수가 매일 주는 물을 조금씩 남겨서 푸른 잎사귀에 부어주곤 했습니다. 그 싹은 마침내 꽃 봉오리가 생기더니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꽃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썼던 글을 지웠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이 돌보신다."

소망이 생기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옥 옆방에 면회왔던 죄수의 딸이 이 감옥 안을 들여다보다가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감옥에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는 소문은 귀에서 귀로,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조세핀 여왕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여왕은 말했습니다.

"꽃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돌보는 이는 결코 나쁜 사람이 될 수가 없다." 그래서 황제에게 건의했습니다.

그래서 샤르니는 석방되었습니다. 샤르니는 감 옥에서 핀 꽃을 집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생명이 다하기까지 가꾸었습니다. 소망은 생명이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소망을 잃지 말고 전진하여야 합니다. 소망은 좋은 동역자입니다.

 

한태완<예화포커스>소망 예화

 

 

소망의 의미

 

소망은 고난이 없음을 가장하는 것과는 다르다. 소망은 그 고통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으며 또한 마음의 상처 역시 곧 치유되어 마침내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내리라는 것을 믿는 마음이다. 우리를 어둠에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빛으로 인도해 내는 것은, 바로 믿음이다.

그 믿음은 바로 우리의 힘의 원천이며 동시에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이다. 믿음은 곧 고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며 그 고난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으며 마음의 상처 역시 곧 회복되리라는 것을 믿는 마음이다. 소망이야말로 삶을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사람들 가운데는 소망을 잃었노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염려할 필요가 없다. 소망의 불꽃은 다시 타오를 수 있다. 주안에서 소망을 품는 자들에게 주님은 복을 주신다. 소망을 되찾을 수 있다. 이 말은 곧 자신의 뜻을 다시 한 곳에 모아, 주를 섬기면 새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지 않는 자들은 소망 없는 끝을 바라볼 뿐이지만, 크리스천은 끝없는 소망 가운데 기뻐한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뒤엉켜 있는 우리 삶의 실타래를 풀어내실 수 있다. 이 뒤엉킨 삶을 하나님의 손에 맡긴 채 그대로 내버려두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며 기쁨인가! 소망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예화포커스

 

 

하루살이의 소망

 

가끔 병원에 가보면 언제 그 병상을 떨치고 일어날지 모르는 지병을 안고 외롭게 투병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대하게 됩니다.

오래 전에 내가 만난 28세의 청년도 그러했습니다. 암으로 인한 고통을 견디다 못해 모르핀을 맞으며 병상 생활을 하다가 나중에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중환자실에서 눈을 감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가족들은 처음에 그 형제에게 암이라는 것을 숨겼습니다. 가슴에 잇는 혹을 떼냈다고 거짓말을 하고, 이제 아물면 퇴원한다는 말로 3개월을 속이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목사인 저는 그 사실을 알고 거의 매일같이 그를 방문했습니다.

제가 예수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잘 생기고 똑똑한 그 청년은 도무지 마음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목사님, 이제 퇴원하면 제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아요. 그러니 조금 더 지나고 나서 예수 믿는 것에 대해서 고려해 보겠어요. 의사 말로는 혹을 떼냈으니까 한 달만 지나면 퇴원할 수 있대요."

그의 포부를 듣는 그 순간에 나는 얼마나 깊은 인생의 비애와 고통을 느껴야 했는지 모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을 활보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이와 같이 어리석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미 우리는 죽음의 운명을 안고 사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죽음을 통해서 겸손을 배우고,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이 지극히 약한 존재란 것을 배워야 합니다.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3:19)

한태완<예화포커스> 소망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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