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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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고린도전서 16:13~14, 22

 


 

할렐루야!

 

사람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강한 것 같지만 누구나 약한 부분을 갖고 있습니다. 감추고 싶은 핸디캡도 있고, 부끄러운 과거의 실패의 경험도 있고,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는 깊은 상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예수를 믿고 난 다음 그러한 나의 약함이 핸디캡이 상처가 과거의 실패가 더 이상 나를 붙잡을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믿음에 굳게 서서 강한 모습으로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큰일을 행하고 나서도 말 한 마디에 무너졌습니다. 이스라엘 왕비가 내일 이맘때 즈음 너도 그들처럼 죽겠다고 하는 그 말 한마디에 두려움이 들어와서 마음이 무너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절 빨리 좀 데려가 주시옵소서." 요즘 말로 말하면, "인생 못 살겠습니다. 나 좀 빨리 천국에 데려가 주세요." 이렇게 고백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문제가 다가오고 어떤 어려움이 다가오고 어떤 시련이 다가와도 절대로 마음이 무너지면 안 되고, 절대로 약해지면 안 되고, 절대로 포기하면 안 되고, 절대로 뒤로 물러가면 안 됩니다. 우린 주님 안에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승리자의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1. 믿음에 굳게 서라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두 번 보냅니다. 첫 번째 편지가 고린도전서이고, 두 번째 편지고 고린도후서입니다. 첫 번째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승리하는 신앙생활의 비결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믿음에 굳게 서라. 믿음에 굳게 서라. 고린도전서 1613절입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깨어라! 절대로 영적으로 잠자지 말고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 영적으로 늘 긴장하고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위기는 언제 오느냐, 영적으로 잠을 잘 때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님 믿을 때 그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은혜가 있습니다, 감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늘 예배드리기를 힘쓰고 기도하기를 힘쓰고 교회 행사에 열심히 참여하고 열심히 섬기고 모든 일에 앞장섰던 그 모습이 어느 순간부터 그 모습에 그런 열심이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자기도 모릅니다. 어느 날 열심이 사라졌어요. 예배에 대한 간절함도 없고 기쁨도 없고 감격도 없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영적인 잠을 잘 때인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주일 날이 되면 아침부터 일어나서 단장을 하고, 오늘 교회 가는 날인데 어떤 옷을 입을까, 이걸 꺼내 입어보고, 꺼내 입어보고 그럴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부터 주일이 왔어, 내가 그래도 교회 집사인데 안 가면 안 되겠지." 이러고 교회를 나왔다고 하면 그는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을 본인이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여기는 한 분도 안 계시지만 저쪽 가면 몇 분 있을 거에요 아마.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기를 바랍니다. 늘 긴장해야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잠을 잔다는 것은 신앙이 나태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미 그 나태해짐 속에 악한 원수 마귀가 우리를 덥석 물어가려고 여러 가지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긴장 상태를 잃어버리면 마귀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절대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을 때는 구경만 하고 있다가, 영적인 잠이 들 때 와서 덥석 물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체조선수들이 늘 신경 쓰는 것이 몸무게입니다. 1970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718일에 여자 체조 경기상 처음으로 만점 받은 코마네치라고 하는 선수가 있는데요, 이 코마네치 선수가 14살입니다. 루마니아 공산 치하에 있던 그 나라에 14살짜리 이 소녀가 키는 153cm, 몸무게 39kg, 이 어린 소녀가 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전까지 누구도 10점 만점에 10점 만점을 맞은 사람이 없었는데, 이 코마네치가 10점 만점 2단 평행봉 그 위를 날아오르면서 10점 만점을 받았고, 무려 그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금메달 3, 은메달 1, 동메달 1개를 얻었어요. 그 기록을 보면 금메달만 올림픽에서 5, 유니버시아드에서 5, 그 외 유럽선수권, 무슨 선수권에서 금메달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늘 몸무게를 신경 쓰느라고, 39kg에서 1kg도 더 늘어나면 안 되니까, 늘 먹는 것을 절제하고 조심했습니다. 그런데 기록을 보니깐요, 금메달 3개 따고 나서 마음이 느슨해졌어요. 긴장을 풀어버리고 나서 그 다음에 먹고 싶은 것 참았던 것, 막 먹었어요. 그래서 2년 후에 무려 10kg가 더 늘어가지고 평행봉 위에서 하다가 미끌어지고 떨어졌잖아요. 그러나, 그 이후 다시 정신 차리고 노력을 해서 다시 금메달도 따고, 세계적인 또 코치가 되기도 했습니다.

 

세상의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도 이렇게 노력을 하는데,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아니하고 영적으로 잠이 들어서 기쁨도 없고 감사도 없고 열심도 없다고 하면 우리는 회개해야 됩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깨어라, 깨어라, 깨어 일어나라, 더 이상 잠자지 마라." 11시 예배에 혹시 어제 밤잠 못 자고 왔다가 졸린 사람은 번쩍 정신이 들거야 아마.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42절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 어떻게 우리가 깨어 있습니까. 성경은 깨어 있는 방법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기도함으로 깨어 있으라, 찬양함으로 깨어 있으라,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찬양과 기도와 감사가 우리를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또 말씀으로 우리는 깨어나야 합니다. 말씀을 읽을 때 우리가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늘 우리는 깨어 있어야 됩니다. 깨어 있어야 되요.

 

운전하는 사람이 졸면 대형사고가 나잖아요. 그래서 일본에서는 블랙 껌이라고 해서 졸음이 올 때 먹는 껌이 있습니다. 그 껌을 먹으면 바짝 정신이 듭니다. 세상 사람들이 운전을 하면서 사고를 안 내기 위해서도 억지로 잠을 깨우는데, 우리가 영적인 사고가 안 나려면 늘 깨어 있어야 되요. 깨어 있어서 강한 믿음의 용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잠자지 않습니다. 늘 깨어 있습니다. 영적인 잠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잠이라는 것은 나태함입니다. 열심이 사라진 것입니다. 주일날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이 없어졌을 땐 벌써 졸기 시작한 거에요. 예배를 자주 빠지면 이미 잠이 든 상태입니다. 예배를 빠지는 것 뿐 아니라 예배를 빠져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퍼질러 누워있으면 큰 위기에 빠진 상태입니다. 깨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을 이 귀한 시간에 주님 앞에 나와서 이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알고, 여러분 평생 예배드리기를 힘쓰고 믿음의 사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가서 하나님의 큰 복을 받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절대로 영적인 잠에 들어서 다시 죄의 노예로 살지 말고, 자유인으로 승리자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51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빌립보서 411절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으라. 데살로니가전서 38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데살로니가후서 215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고,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해서 굳건히 서서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갈 때 하나님의 큰 은혜와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하고만 함께 일하시지 절대로 영적인 잠을 자고 게으른 사람하고 일하지 아니하십니다. 가나안 정복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주신 권면의 말씀, 축복의 말씀이 여호수아서 1장에 나오는데 19절은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할렐루야.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큰 믿음의 용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믿음의 용사가 된 후에 우리는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해야 됩니다. 둘째로,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할 것에 대해서 고린도전서 1614절은 말씀합니다.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사랑으로 행하라. 오늘날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이 바로 사랑실천입니다. 사랑실천. 사랑을 해야 되는 것을 다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누가 옆에서 어려움을 당하는데도 나의 일이 아니니깐 관심을 갖지 않고, 그의 어려움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크리스천으로서 낙제점인 것입니다. 이웃이 고난을 당할 때 그것을 도와주고, 기도해주고, 위로해주고, 그를 일으켜 줘야 되는 것입니다.

 

최근 유명한 배우 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가지고 온 뉴스에 그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울증이 옛날에는 열 명 중에 한 명이었는데, 요즘은 일곱 명 중에 한 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깐 일곱 사람 중에 한 명을 우울증 증세가 크고 작든지 간에 있는 것입니다.

 

그게 우울증이 좀 깊으면 기도원 들어가서 기도굴에서 몇 시간 부르짖으면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주변에 이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내버려두면 안돼요. 그러면 이런 잘못된 극단의 선택을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큰 상처와 절망을 갖다 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실천을 다른 것이 아닙니다. 꼭 내가 가진 물질을 통해서 누구를 섬기라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에 병든 사람, 가정에 문제가 생겨서 깊은 상처 속에 감정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을 찾아가서 같이 울어주고, 같이 기도해주면 그것이 바로 사랑실천의 모습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어야 됩니다. 우리가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잖아요. 나누라는 말을 하면 아멘이 없어져요. 갑자기 조용해져요. 여러분, 여러분 다 부자잖아요. 여러분 다 부자이지 않습니까. 부자예요. ? 온 우주 만물을 다 갖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니까. 얼마나 부잣집 자녀로 우리가 태어났습니까? 여러분 다 복덩어리가 된 거예요. 큰 부자가 되었으니 마음의 부자가 되어서 이제는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13절을 말씀합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믿음이 신앙생활의 뿌리라고 한다면, 소망은 큰 줄기가 되고, 사랑은 열매가 됩니다. 그런데 깊이 뿌리를 내리고 나무줄기가 높이 뻗었는데 열매가 없으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과나무에 사과가 안 열리면 그 사과나무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포도나무에 포도가 안 열리면 그 포도나무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크리스천 나무에 사랑의 열매가 없으면 그것이 어떻게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지금까지 내게 누가 무엇을 주는 사랑만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그것에만 만족했다고 하면 오늘부터는 그 모습을 바꾸어서 남이 나를 알아주던 안 알아주든지 간에 내가 받은 것을 나누고, 또 나누고, 또 나눌 수 있는 그러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사랑은 희생입니다. 희생, 섬김, 나눔, 낮아짐 이것이 사랑입니다. 정말 사랑하니깐 또 주고, 또 주고, 또 주어도 더 주고 싶은 거예요. ? 사랑하니깐. 그것이 부모가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입니다. 남들은 '저 집 아이가 문제가 많아' 해도 자기의 눈에 보기에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내새끼인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 사랑이예요. 여러분, 이 사랑을 갖고 이웃을 사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 사랑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사랑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작은 예수로 불렸던 이 땅에 왔던 한 선교사, 서서평 선교사를 소개합니다. 미국 남장로교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여선교사' 7명 중에 한 사람으로 뽑힌 이 서서평 선교사는 독일계의 미국인인데 엘리자베스 쉐핑이라고 하는 본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에 와서 한국식으로 이름을 서서평으로 만들었습니다. 32살의 젊은 나이로 미혼으로 한국에 와서 평생을 섬기다가 그는 주님 앞에 부르심을 받았는데. 사실 저희 때만 해도 선교사님이 한국에 오셔서 조금 우리보다 나은 삶을 사셨는데 이 서서평 선교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와서 오히려 가장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검정 고무신 신고 얼굴 치장한 적도 없고 그냥 남루한 옷을 입고 과부, 고아들 돌봤습니다. 열네 명의 길거리에 버려져 있는 애들을 데려다가 자기 집에 같이 살았고요. 소박맞고 버림받은 여인들 서른여덟 명과 같이 살았어요. 선교후원금이 오면 그들을 돌보느라고 그 헌금을 다 썼고, 그리고 전남 광주에서 그분이 평생 사역을 하시는데 광주 양림촌에 가면 거지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그 거지들을 데려다가 다 목욕을 시키고 깨끗한 옷 갈아 입히고 음식을 차려주고 또 지나가다가 한센병 환자들 보면 사람들 다 침 뱉고 피해가고 돌 던지고 그랬는데 그들을 데려다가 목욕을 다 시키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히고 음식을 대접해서 보냈던 정말 예수님처럼 살았던 분입니다.

 

서서평 선교사가 1928년 평양에서 열린 한국 간호협회 총회에서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사랑의 종교에서 구제를 제해버린다면 남는 것이 무엇일까요? 구제는 사랑의 발로입니다. 제 아무리 십자가를 드높이 치켜들고 목이 터질 만큼 예수를 부르짖고 기독교 신자라 자처한다 할지라도 구제가 없다면 그것은 참된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는 쉰네 살의 나이로 천국에 갔는데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유일한 재산은 담요 반 장, 동전 일곱 개, 강냉이 가루 두 홉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동료 선교사가 그의 장례식에 왔다가 침대 머리맡에 쓰인 글귀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Not Success but Service.

 

진정한 성공은 섬김에 있는 것입니다. 대접받고 박수갈채 받고 높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럴수록 더 낮아지고 더 섬기고 더 겸손할 때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열어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광주시 최초로 시민사회장이 열렸는데요. 그 장례행렬에는 수백 명의 한센병 환자들과 거지들 또 많은 사람들이 울며 그 장례 그 상여를 뒤따라 가면서 "어머니~ 어머니~" 울며 외치면서 그 장례행렬을 따라갔다는 기록이 나왔습니다. 당시 동아일보에서 그녀의 죽음을 대서특필하면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자선과 교육사업에 일생을 바친 빈민의 어머니 서서평 양 서거" 그리고 부제를 "재생한 예수" 이 땅에 예수님의 몸을 입고 왔다고까지 그녀를 높이 평가하고 칭찬했던 것입니다.

 

한 여인이 이 땅에 와서 저 광주에서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선교의 삶을 살았지만은 그가 남긴 이 사랑의 흔적은 지금도 기억되고 있고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많은 사람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던 것입니다.

 

3. 주님을 사랑하라

 

이것은 사랑실천의 사람입니다. 이 사랑실천의 삶에 근본정신은 주님을 사랑한데에 있습니다. 오늘 22절은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여기 말의 의미는 이것입니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가장 사랑해야 되는데,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왜 이 말을 고린도교회에 썼냐 하면 고린도교회가 하나님의 큰 은혜와 축복을 받고도 영적으로 교만해서 타락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경고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고린도교회에 복을 주셨는지 고린도교회에 성령의 은사가 충만했습니다. 방언과 예언과 병 고침과 각종 은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서를 보면 그 성령의 은사에 대한 것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은혜 충만하고 성령충만하면서 교만해져서 교회 내 분파를 만들었습니다. 아볼로 파, 게바 파, 그리스도파, 바울파, 파를 만들어 가지고 파벌싸움을 했습니다. 자기끼리 맞는 사람들끼리 교회 내 파벌을 만들어가지고 주도권 싸움을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모습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내세웠지만은 결국 자기들의 집단 이기주의에 따라서 저들이 움직였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경고한 것입니다. "너희들이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 하면 안 된다. 주님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이 교회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데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들이 교회 내에 파벌을 만들고 나누고 다툰다면 그것은 다시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고 주님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잘못된 모습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 죄를 짓는지 아십니까? 예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왜 타락하는지 아십니까? 예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타락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그러한 모습은 있으나, 그 속이 썩어져 들어가서 주님 사랑보다 자기 사랑을 더 위하기 때문에, 교회에서 알아주면 봉사하고 알아주지 않으면 시험에 들고 그것은 다 잘못된 신앙인 것입니다.

 

남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기쁨으로 섬기는 것이 진정한 섬김의 모습입니다. 교회학교 교사로 섬기든지, 남녀 선교회에 나와서 봉사를 하던지, 찬양대로 나와서 봉사하던지, 오케스트라로 나와서 봉사하던지, 어디서 무슨 봉사를 하든지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감격 속에 주님을 섬기는 것이 진정으로 주님을 섬기는 모습이지, 내가 이렇게 새벽에 나와도 아는 사람 한 사람도 없고 내가 "어휴."이랬다면 받은 은혜가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쁨으로 섬기시기 바랍니다. 감사함으로 섬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주님을 섬길 때 기쁨과 감사로 섬기면 하늘의 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10절은 말씀합니다.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여러분,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기 바랍니다. 나의 삶의 모습이 주님께 기쁨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그 모습이 주님께 기쁨이 되기를 원합니다. 가정주부는 가정에서 음식을 할 때도 그 모습이 주님 보시기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모습이 되기를 원합니다. 직장인이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할 때도 그 모습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업을 하는 분이 사업을 하면서 그곳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기의 전공 분야를 통해서 주님을 섬기는 분들이 그곳에서 그 모습이 바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 모습을 통하여 주님께 영광 돌리므로 주님께 인정받고 세상에서 인정받는 그러한 귀한 일꾼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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