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성경인물 2 - 마가 (할례당이었던 사람)




오늘은 우리 마가복음의 기자였던 마가, 마르코스라는 사람을 만나봅니다. 마르코스는 이름의 뜻이 비추다하는 뜻인데 복음의 광채를 잘 비추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본명은 요한이었지요. 요한이란 말은 헬라어로 요한이고, 히브리어는 여호와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신 분이시다 그런 뜻이지요. 그의 어머니는 바나바의 여동생이었고, 구브로 출신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아주 부유한 자라났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아버지는 일찍 아마 세상을 떠났던 것 같습니다.


마가복음 1413절에 보면 물동이를 가지고 가는 제자를 안내했던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마가였다고 봅니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시던 새벽에 벗은 몸으로 홑이불만 가지고 몸을 두르고 홑이불을 벗어 제키고 알몸으로 도망갔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도 마가가 자기 자신을 묘사 했다고 봅니다.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로서 그의 어머니 역시 이름이 마리아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리아라는 이름이 성경에 참 많이 등장합니다.


마가는 어려서부터 헬라어를 배웠고, 또 비교적 여유 있는 가정에서 자라났습니다. 율법에도 매우 열심히 있었던 것 같이 보이는데요. 특별히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는 매우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그런 여성이었던 것으로 봅니다. 그녀의 다락방에서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드셨고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계속적으로 모임을 가질 수 있었던 곳이, 바로 이 마가 요한의 2층 방이었습니다.


다락방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다락방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큽니다. 선교사들하고 한국의 학자들하고 성경 번역할 때에 방 위에 또 방이 있다니깐 2층 방이란 개념이 없어가지고 다락방 그렇게 했던 모양인데, 우리는 보통 옛날 다락방은 부엌에 있는 방이지요. 그런 정도가 아니고요. 120명이나 들어 갈 수 있는 큰 홀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유월절 식사를 위해서 준비 하라 하실 때에 이를 주선했던 사람이 바나바였다고 할 수 있어요. 바나바는 아마 70인 제자 중에 한 사람 같이 보이는데, 이 사람이 자기 여동생이 예루살렘에 살고 있으니까, 대체로 예수님 그 예루살렘 오시면 참 마땅히 쉴 만한, 유숙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어요. 대체로 베다니에, 그 예루살렘 달동네라 할 수 있는 그 베다니에 가서 나사로 집에 가서 그저 하루 밤 묵어가시고 이런 정도 하셨는데,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 때 이때는 바나바가 자기 누이동생이었던 그 마가의 어머니, 그 어머니 하고 상의해 가지고 이 다락방을 예수님 최후의 만찬 석으로 준비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바나바는 성격이 온유하고, 또 착하고, 후덕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지요. 그러니까 그의 누이가 되는 마리아 역시 그 오라버니 하고 성품이 비슷해 가지고 성품이 아주 아름다운 그런 여인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유대인들 중에서 본토에서 자란 사람들보다는 열방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 중에 오히려 경험이 넓고, 또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죠. 유대인들이 유일하신 하나님만 섬기면서 고도의 윤리와 또 넓어진 안목을 갖췄을 경우에는 복음 사역에 아주 좋은 일꾼들이 된 경우가 많습니다. 바울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되겠고요. 바나바, 아볼로, 디모데, 아골라, 브루스길라, 루디아 등의 걸출한 그런 인물들이 다 유대인으로서 해외에서 견문을 넓힌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넓은 세상으로 여행을 해보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도 매우 유익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본토에서 폐쇄된 율법주의자가 되었을 때는 복음의 거치르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본 대로 유대인으로서 넓은 세상을 다녀본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아주 유익하게 쓰임 받는 그런 일꾼들이 많았지요. 오라버니 바나바를 통하여 예수님을 알게 된 마리아는 그 요한 마가의 장래를 자기 오라버니 되는 바나바에게 아마 맡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외삼촌 바나바를 수행하면서 안디옥에서 일하고 있다가 첫 번째 전도여행에 바울과 바나바의 수행원으로 동행을 했습니다. 그러나 거기 밤빌리아 지방을 여행을 하다가 버가에서 마가가 이탈하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요.


그래서 거기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너무 힘이 들어서 그냥 마가가 포기했다 보는 그런 시각도 있고요, 또 하나는 성경을 자세히 보면 마가가 열심 있는 율법주의자고, 할례당 이었다고 그럽니다. 할례당 사람들은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마구 세례를 주는 건 도무지 용납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어도 할례당들은 꼭 할례를 받고 결례를 행하고 유대인 되는 절차를 밟은 후에 예수 믿어야 구원 받는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죠.


마가가 바로 이런 소신이 있어가지고 바울하고 함께 할 수 없다고 해 가지고 아마 이탈된 것 같이 그렇게 보입니다. 이 문제는 바울과 마가의 관계를 매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때는 마가가 끝내 바울의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돌아섰던 때죠. 그러나 첫 번째 전도여행은 마가가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매우 성공적으로 열매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전도여행을 떠나게 되었는데 첫 번째 전도여행과 두 번째 전도여행 어간에 예루살렘 총회가 있어서 바로 그 문제가 다뤄졌습니다. 즉 이방인 중에서 주께 돌아오는 사람들을 할례를 베풀고, 결례를 행하고 유대인 되는 절차를 밟아야 되느냐 아니면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바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가 이 문제가 확정이 났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 중에서 주님께 돌아오는 사람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면 잘 되리라 하는 그런 결론이 났기 때문에 마가는 그 예루살렘 총회 결정을 수긍하고 받아 들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전도여행에 동행하겠다고 나오니깐 바울이 안 된다고 이제 거절한 것이죠. 이 문제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가 심히 아주 다투었는데, 마침내 바울과 바나바는 결렬되고 바나바가 인제 자기 생질 되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 쪽으로 두 번째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실로암을 데리고 길리기아 다소 쪽으로 가서 중앙아시아로 갔지요. 소아시아 중부 지방으로 여행을 하게 됐습니다. 그 뒤에 바나바가 아마 세상을 떠난 것 같아요. 일찍이 순교했는지, 떠난 것 같고. 그 후에 마가는 베드로의 수행원으로 있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마가는 할례당 이었고, 할례당은 또 바울을 용납하지 못하고, 바울도 할례당을 용납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는 가운데 마가는 바울을 이해하게 되었고, 할례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란 사실을 마가가 깨닫게 된 것이죠. 반면에 바울은 마가 같은 사람은 주의 복음을 위하여 적합하지 않다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마가가 매우 훌륭한 사역자가 되어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울이 로마에서 연금 상태에 있을 때에 마가가 바울을 면회하기 위해서 방문을 했어요. 그러니까 마가가 마음을 넓힌 거죠. 자기를 그렇게 비난하고 거절했던 바울이 로마 옥에 연금 돼 있으니까 이 사실을 위로하기 위해서 마가가 찾아가는 그런 모습을 봅니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죠.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때는 결렬되었던 때로부터 약 1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후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많은 대화를 통하여 바울과 마가는 서로 깊은 이해와 교제를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마가가 다녀간 후 바울은 곧 이어서 에베소서, 골로새서, 그리고 빌립보서, 빌레몬서 이런 편지를 쓰는데, 골로새서를 보면 바울의 서신에 바울이 마가에 대하여 한 말을 읽을 수가 있는데요, 바울은 마가가 골로새에 방문하거든 주님의 사자로 합당한 예절로서 영접하라는 그런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나와 함께 갇힌 아디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희는 할례당 이라 이들만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골로새서 410절과 11>


10절을 보면 가로 안에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하는 말이 부연돼 있지요. 바울이 마가하고 이해가 서로 되어 가지고 아마 그 전에 바울이 골로새 지방 사람들에게 마가 같은 사람은 아주 고약한 인물이라고 아마 그런 말이 있었던 거봐요. 근데 바울이 태도를 변해서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하고 유수도를 보면서 바울은 차츰 할례당 가운데도 하나님의 일꾼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바울이 마가를 다시 나의 동역자라고 부르고 있지요. 빌레몬서에 보면 24절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마가는 바울의 생각보다 더 훌륭한 일을 많이 해냈습니다. 바울이 볼 때도 그렇지요. 율법에도 밝은 사람이고요, 복음도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바나바를 수행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고, 베드로를 또 수행하면서 더 깊이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바울을 이해하게 됨으로서 가장 넓은 이해력을 가진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율법도 이해하고, 바나바에게 배우고, 베드로에게 배우고, 바울까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니까 마가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예수님의 생애에 대하여 비교적 간결한 복음서를 기록하여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알고 있는 이 마가복음이 그 책이지요.


전승에 의하면 마가는 애굽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에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에도 마가의 전통을 이어 오는 교회들이 건재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베니치아에도 가보면 산마르코 교회와 산마르코 광장이 유명합니다. 마가의 활동영역은 유대와 구브로, 안디옥, 소아시아, 로마 베니치아, 애굽의 알렉산드리아 등 온 세계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 사도 이후에 바울 사도에 버금하는 그런 활동의 영역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전승에 의하면 A.D.74년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했다고 전해 있는데요, 순교하자마자 베니치아, 그 로마 쪽에 있는 베니치아 사람들이 마가의 마가 요한의 유해를 가지고 가서 안장을 하고 거기다가 산마르코 교회, 즉 마가 요한의 기념 교회를 세운 것이지요. 주경학자들에 의하면 복음서들 중에서 마가복음은 매우 일찍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마가복음은 베드로에게 들은 것을 마가가 잘 정리했다는 사실 때문에 권위 있게 여겨줬고요, 또 많은 사람들이 이를 참고했지요. 1차전도 여행 중에 도중하차한 까닭에 대해서 마가는 한 동안 불편한 관계였지만 이러한 관계는 10여년이 지나서 바울이 로마에서 연금 되었을 때에 마가가 감옥으로 찾아옴으로서, 두 사람의 관계는 서로 이해가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 바울이 순교직전에 마멘틴 감옥이라는 감옥에서 쓴 디모데후서에 보면 디모데에게 부탁을 하기를 마가를 데려오라고, 저가 나의 일에 특별히 유익하다고 그렇게 부탁하는 모습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마가의 훌륭한 사역을 우리가 보면서 처음에 실수했지마는 나중에 바른 길로 걸어 간 마가를 보면서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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