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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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히 서 가는 교회
엡2:19-22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에베소서는 바울사도가 60-62년경 로마 감옥에서 자신이 3차전도 여행 중, 약 3년 동안 머물며 복음을 전했던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와 골로새서, 빌레몬서 등과 함께 옥중서신으로 분류됩니다.
    
바울사도는 옥중에서도 이방인들 중심으로 이루어진 에베소교회가 복음 안에 든든히 세워져가길 원했을 것입니다. 당시는 교회라는 자체가 생소하던 때라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도의 몸인 교회와 지체인 성도들과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먼저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기 전 예수님과 어떤 관계였는지를 말합니다.
    
엡2:1-3절에‘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에베소교회 성도들은 원래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로,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며,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던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던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이러한 에베소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말씀합니다.
에베소 교회의 모습은 다름 아닌 예수 믿기 전 우리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허물과 죄로 진노의 자녀들이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진노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사건인지를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바울사도는 엡2:8절에‘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고, 오늘 본문 엡2:19-22절에‘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말씀 합으로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들처럼 ‘든든히 서 가는 교회’가 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완전한 모습을 갖춘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 서로 부족한 점을 도와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부족하고 미완성의 모습을 볼 때 흠집을 내고 깎아내리기 전에 서로 부족한 점을 서로 보완하므로 완전한 그리스도의 지체를 이루어가도록 서로 인내하며 노력해야합니다. 완전한 지체를 이루어 가는 과정이 힘들고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편함을 참고 감당하는 것 역시 우리가 함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지어져 가는 과정이고, 우리는 함께 지어져가는 과정에 든든히 서 가는 들풀쉼터 교회의 지체로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 든든히 서 가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어떤 교회가 되어야하겠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예배와 순종,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가 공경할 주인이시며, 사람의 뜻이 이루어지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교회를 말 합니다.
    
교회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주님이 세운 공동체입니다.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고, 참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이기에 교회는 주님의 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그 피 값으로 세워진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오직 주님만이 주인 되시며 주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목회자와 온 성도들이 마음과 힘을 모아야 합니다. 늘 겸손히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합심하여 주님의 뜻을 구하며 그 뜻에 순종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과 기도로 충만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 안에 주님의 뜻이 있습니다. 주님의 뜻은 목회자와 온 교우들이 말씀과 기도에 힘쓸 때 주님께서 보여주시고 깨닫게 해주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기도와 말씀에 힘쓰는 교회, 우리 모두가 주님을 주인으로 영접하고 기도와 말씀에 힘씀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교회의 직분 자들은 더욱 더 섬기는 마음자세로 주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성도들을 섬기고 사랑해야합니다. 기도하는 교회.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 주님을 위해 온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해 섬기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교회가 되어야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죽어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주님께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데 힘쓰므로 잘했다 칭찬 받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요4:23-24절에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는 말씀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에 합당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시는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참 예배 자들이 되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우리에게 은혜와 복으로 충만하게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둘째는 복음을 전하는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성령강림 사건이 있었고, 그 후 초대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했는데, 예루살렘과 이방인의 땅 안디옥과 아시아와 마게도냐와 고린도 등에 교회가 세워졌고, 후에는 로마까지 복음이 전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하면 예루살렘 교회만을 생각하는데 이방인 나라에도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물론 빌립보에서 바울의 설교를 듣고 그리스도인이 된 최초의 유럽에 세워진 교회인 자색 옷감 장수 루디아(Lydia)의 집과 같이(행16:14) 가정 교회의 형태였지만 이 교회들을 통해 복음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에는 만 오천 명 정도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있고 백여 개의 유대인 교회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 때문에 유대교인들에게서 배교자로 낙인찍히고 이제 더 이상 유대인이 아니라고 비난과 차별을 받고, 심지어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셨고, 제자들도 유대인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역시 유대인들의 교회였습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종교를 만들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완성하시고, 유대인들과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초대교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의 전통에 따라 성전에 가서 기도했고, 각지에 있는 유대인 회당에 모였으며, 유대인으로서의 절기와 정결법과 할례를 지켰습니다. 후에 유대교와의 갈등과 핍박,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공인 등으로 인해 나뉘게 되었지만, 최초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유대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인 구원자로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유대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여전히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유대인의 절기와 전통을 지키고, 동시에 복음의 능력과 자유를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근래에 와서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신문에서 특집기사로 다루기도 하고,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교수, 의사, 변호사, 기업가 등이 나오고, 정계에도 진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열정을 품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복음은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구원의 통로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교인 수를 늘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한 영혼을 영원한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는, 주님께서 그렇게 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전하고 증거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주님 안에서 평안한 교회입니다.
    
‘평안’을 헬라어로는 ‘에이레네’(Εἰρήνη)이고 히브리어로는‘샬롬’(שָׁלוֹם)입니다.
    
‘샬롬’은‘평화’(peace)를 의미합니다. ‘샬롬’은‘샬렘’(완전하다, 건전하다)의 명사형입니다. 아무런 흠도, 결함도, 손상도 없는 상태가 바로 완전함입니다. 이러한 완전함은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진정한‘샬롬’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통해서만 우리는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교회나 가정의 평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나 가정도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온전해야 평안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인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온전하고 올바르게 서 있고 주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할 때 교회는 평안이 임하게 됩니다.
    
이러한 평안이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예배에 임해야 합니다. 교회의 운영에도 주님의 샬롬이 임해야 합니다. 사람의 뜻으로 운영되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뜻 안에서 운영되는 교회가 될 때, 평안이 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겸손과 사랑으로 섬기고 봉사하며, 용서와 위로함으로, 주님의 평안이 임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과의 온전한 관계가 이루어지고 주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 교회에는 참 평안이 임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러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네 번째는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교회입니다.
    
갈5:16-18절에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교회는 성령이 친히 교회를 이끄시고 다스리시고 격려하시고 힘을 주시고 위로하시는 교회입니다.
    
교회 역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에 약점이 있고 한계가 있고 문제가 있고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약점과 한계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교회는 성령께서 위로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힘을 북돋아 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고쳐주시고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심으로 교회의 여러 문제와 갈등과 약점을 이기고 바로 서 갈 수 있게 됩니다.
    
우리 교회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고, 성령의 위로하심으로, 우리 교우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만져주시고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힘을 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고쳐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고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눅11:13절에‘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말씀하신 것과 같이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시고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게 하심으로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모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교회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주님의 뜻을 깨닫고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행복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바라고, 날마다 기도와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힘쓰며, 나쁜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위로하는 성도들이 되어야합니다. 사랑은 성령의 첫 번째 열매입니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교회는 사랑이 충만하고, 기도와 말씀이 살아있고, 거짓이 없는 진실하고 순결한 복음을 전하는 열정이 있는 교회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한 영혼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한 영혼을 구원하기위한 뜨거운 눈물이 있고 용서가 있고, 섬김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나 하나 구원받아 잘 먹고 잘 살다가 천국 가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가정, 우리가 일하는 일터, 살아가는 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이고 꿈이고 열정이 되어야합니다.
    
이 열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잃어버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회복시키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교회 교회가 설립 된지 12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12년을 돌아보면 참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일을 하는 우리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경외함으로, 성령의 위로하심과 힘주시고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이루기 위해 우리의 모든 열정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습니다.(막4:20)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 17) 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불의가 없고, 정의로운 나라이며 근심, 걱정, 두려움, 불안이 없는 나라이며, 기쁨과 즐거운 찬송이 있는 평강의 나라입니다.
    
    
옛날 중국에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화가가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자기의 그림이 제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임금님이 두 화가를 왕궁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제목을 하나 주면서 그림을 그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림의 제목은‘평화’였습니다. 두 화가는 ‘이제야 말로 나의 솜씨를 발휘할 때가 되었구나!’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드디어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두 화가가 그림을 들고서 왕궁으로 왔습니다. 임금님과 신하들이 다 모여서 그림을 감상합니다.
    
첫째 화가가 그린 그림은 깊은 산속 그림이었습니다.
    
풀잎 하나 나뭇잎 하나 움직이지 않는 고요함과 적막함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널따란 잔디밭이 있었습니다. 잔디밭 위에는 한 노인이 길게 누워서 세상모른 채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가 기르는 개가 고개를 다리 속에 파묻고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쳐다보기만 해도 졸음이 와서 눈이 스르르 감길 것 같은 그림이었습니다.
    
둘째 화가는 거대한 폭포를 그렸습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의 우렁찬 소리가 들리는 듯한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폭포수 중간에 하나의 가느다란 긴 나뭇가지가 뻗어 있었습니다. 그 나뭇가지 중간에는 새 둥지 하나가 놓여있었습니다. 새 둥지 안에는 어미 새 한 마리가 폭포수에서 떨어지는 물의 튕김을 받아서 흠뻑 젖은 채 눈을 꼭 감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 어미 새 품안에는 새끼 새 몇 마리가 평안하게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두 그림이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이 두 그림 가운데 어느 것이 참 평화일 것 같습니까? 아무것도 할 일 없이 낮잠을 자는 것이 진정한 평화이겠습니까? 요양원에 계신 노인들은 하루 종일 그곳에서 아무런 일도하지 않고 쉬기만 합니다. 우리도 언제인가 그런 쉼을 쉬게 될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 중에 이런 쉼을 바라는 분들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수고의 땀을 흘린 후에 얻는 평안, 이것이 진정한 평안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바쁘셨습니까? 쉴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쁘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를 지나가실 때 거센 풍랑으로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을 때도 예수님께서 주무시는지라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할 정도로 풍랑이 일었지만, 예수님은 피곤하여 평안히 주무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평안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명에 충성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분주히 일하다 보면, 때로는 사람들로부터 이런저런 비난의 소리가 쏟아질 수가 있고, 무거운 짐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속에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평안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입니다. 찬송가 419장 작사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이렇게 찬양하고 있습니다.
    
‘주 날개밑 내가 편안히 쉬네 밤깊고 비바람 불어쳐도 / 아버지께서 날 지키시리니 거기서 편안히 쉬리로다 / 주 날개밑 즐거워라 그 사랑 끊을자 뉘뇨 / 주 날개밑 내 쉬는 영혼 영원히 거기서 살리.’
    
    
우리를 사랑하시는 평강의 주님께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음으로 나갈 때, 우리 모두에게 평안을 주시고, 복음을 전할 때, 성령께서 함께하시고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늘 충만한, 든든히 서 가는 우리 교회가 되고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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