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
[ 요한복음 10:11 - 10:15 / 찬송가 569 장 ]
선한 목자와 삯꾼의 차이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예수님의 선한 목자 선언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중심문단 ●11 "I am the good shepherd. The good shepherd lays down his life for the sheep. 12 The hired hand is not the shepherd who owns the sheep. So when he sees the wolf coming, he abandons the sheep and runs away. Then the wolf attacks the flock and scatters it. 13 The man runs away because he is a hired hand and cares nothing for the sheep. 14 "I am the good shepherd; I know my sheep and my sheep know me-- 15 just as the Father knows me and I know the Father--and I lay down my life for the sheep.
삯꾼과 선한 목자의 차이
이어서 예수님은 선한 목자 비유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셨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자신이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선한 목자의 반대말은 삯꾼입니다. 사실 삯꾼이란 임금을 받고 양을 치는 자로서 주인인 목자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양을 돌보며 지켜야 할 임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삯꾼은 양보다 임금에 더 관심이 있고 자신의 안전이 양보다 우선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삯꾼과 목자가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리 떼의 공격과 같이 위험이 닥치게 되면 그 둘은 분명하게 구분이 됩니다. 여기서 삯꾼은 양을 위해 희생하려는 목자의 심령과 희생은 전혀 없고 오로지 삯에만 관심이 있었던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같은 지도자들로 인해 양 된 백성은 유리방황하며 사나운 짐승들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같은 모습을 보시며 이렇게 탄식하십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내 양 떼가 노략 거리가 되고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된 것은 목자가 없기 때문이라 내 목자들이 내 양을 찾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이고 내 양 떼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겔 34:8).
선한 목자가 되신 예수님
이것은 헬라어 원문에 보면 ‘바로 그 선한 목자’로 되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왕과 종교지도자들을 목자로 세워 백성을 돌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지 않고 악한 목자처럼 행했으며, 양들은 방황하며 사나운 짐승들의 먹이가 되어버렸습니다(사 56:10-11). 그래서 하나님은 예언을 통해 자기의 마음에 합한 한 목자를 보내 이스라엘을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겔 34:23).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이 예언의 성취를 위해 오신 바로 그 선한 목자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자기를 아시듯이, 양을 알고 있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안다는 단어는 학문적인 단어가 아니라 아내가 남편을 알듯이 구체적이고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또한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은 참으로 양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치유 받은 맹인과 같은 겸손하고 정직한 양은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아킨인(Archin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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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킨 사람 타티아나는 아킨인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러시아가 우리 마을에 도로를 닦은 후로 우리 아킨 사람들의 삶이 힘들어졌어요. 가축을 치고, 천을 짜고,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살던 우리는 러시아 정부의 압력을 받게 되었죠. 우리는 민족으로 인정도 못 받고, 아바르인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바르어를 말하고 쓸 줄 알지만, 우리만의 언어, 아킨어가 있는데도 말이죠. 우리 고유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빼앗기고 싶지 않습니다.” 다게스탄 남부 산악 오지에 약 2천 명의 아킨인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엄격한 수니파 무슬림이며, 정치적 압박과 아바르어 사용을 강요하는 분위기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위협당하고 있습니다.
■ 아킨인이 다게스탄에 있는 신자들과 교류할 수 있게 되기를, 그들의 제2외국어인 아바르어로 된 성경을 접하게 되기를, 더는 이슬람에 현혹되지 않도록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