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반응형


영광을 구하는 인생들이여!
(시 148:1-14, 시 150:1-6, 요 5:49)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 5:44)


 사람들은 영광받기를 좋아하고 기뻐합니다. 그래서 서로 영광받기 위해 애쓰며 남보다 더 영광받는 자리에 앉기 위해 경쟁하며 다투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사실 사람들이 구하는 세상의 영광은 궁극적인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끝없는 탐욕과 허무감만을 더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생들은 그 영광을 구하는 것을 생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곤 하는 것입니다. 이에 오늘 우리는 그렇듯 영광을 구하는 인생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성경적 교훈들을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스스로 영광을 구하지 말라

 요한복음 5:44에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니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이 하늘의 영광을 사모하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영광을 더 추구한다면 그는 예수님을 바로 믿을 수가 없고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늘 나라의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데 있고, 우리가 따라가야 할 예수님의 삶이 바로 자기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기를 비우고 의당 받을 수 있는 영광마저도 거절하고 종의 형체를 입고 섬기는 생활을 하시다가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자 하지 않고 또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영광을 바라지 않고 허영심을 가지고 자신의 세상 영광을 구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바로 믿을 수가 없고 참된 신앙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참된 영광을 원한다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해야지 자기가 억지로 높아지고 영광받으려고 하면 안됩니다. 자기를 비우고 낮아지며 하나님의 영광만 위해 살다보면 때가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높여 주시고 영광을 받게 해주십니다. 세상의 모든 다툼이나 전쟁이나 모든 비극은 바로 서로 영광을 취하려고 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다투고 싸우고 남을 짓밟고 죽여서라도 명성을 얻으려고 하는 데서 모든 비극이 일어납니다. 종교 지도자들까지도 많은 돈을 써가면서 감투를 쓰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고 탄식하신 말씀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만든 영광은 꽃과 같이 금방 시들어 없어지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영원히 빛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지 말라

 성경은 자기 스스로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근본 신앙에 어긋난다고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을 가로채거나 도적질하지 말라고 엄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 115:1에 보면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라고 시편 기자의 간절한 기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원이 곧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 합니다. 사단 마귀는 원래 천사장 루시퍼(Luciffer)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가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를 빼앗으려다가 저주를 받고 쫓겨난 데서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는 죄는 무서운 반영의 죄입니다.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헤롯 왕이 왕복을 입고 백성 앞에 나와서 연설을 하는데 얼마나 잘했던지 백성들이 크게 소리치기를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신인 체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니까 천사가 쳐서 충이 먹어 그 자리에서 즉사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교만하여 하나님의 영광까지 제 것인양 도적질하면 타락하고 멸망합니다. 박태선 장로가 은혜 좀 받고 병자를 고치고 기사와 이적을 나타냈다고 인기가 올라가자 자기를 성경에 나타난 '감람나무'라고 높이기 시작하더니 '영모'라고 하면서 말세에는 자기의 신령한 젖을 먹지 않으면 지옥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성격을 찢어 버리고 십자가를 떼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는 완전히 엽색 행각만 일삼는 마귀 중의 큰 마귀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으면 이렇게 타락하고 멸망하고 맙니다.

 마태복음 7장에 보면 예수께서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거라 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왜 예수의 이름으로 병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내고 선지자 노릇까지 했는데 도무지 모른다 했을까요? 그 모든 동기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데서 비롯되지 않았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 예수의 이름을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시발점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들어갔을 때 고넬료가 베드로에게 엎드려 절하려고 하자 베드로는 "일어나라 나도 사람이라"고 외치며 고넬료를 일으켰습니다. 또 사도행전 14장에 보면 바울이 앉은뱅이를 고쳐 일어서는 것을 보자 그 지방 사람들이 바나바는 쓰스(Zeus) 신이라 하고, 말 잘하는 바울은 허매(Hermes) 신이라 하면서 화관과 소를 가지고 와서 제사하려는 것을 보고 옷을 찢으며 소리질러 말하기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고 했습니다. 응당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무지하여서 사람인 그들에게 돌리려는 것을 보고 얼마나 안타까왔으면 옷을 찢으며 소리질러 뿌리쳤겠습니까?

 1808년, 음악가 프란츠 하이든(Franz Joseph Hyden)이 죽기 일년 전에 늙고 쇠약한 몸으로 훨체어를 타고 유명한 그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연주회에 참석하려고 비엔나(Vienna)에 왔을 때 연주 도중 '빛이 있으라'는 대목에서 어둡던 홀안에 불이 커지며 작곡가 하이든에게 청중들이 우뢰같은 박수를 보낼 때 그는 힘을 다해 일어나 손짓하면서 '아니요, 아니요. 그것은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저쪽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이 왔습니다'(No, No! not from thence-from Heaven above comes all things)라고 외쳤습니다. 그 노음악가의 극적인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두고 두고 잊을 수 없는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런 신앙이 있으니까 그런 훌륭한 음악을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스스로 영광을 취하려 하다 못해 하나님의 영광까지 도적질하는 것은 무서운 범죄 행위요, 타락과 멸망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3. 항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받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오매불망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과 찬송과 감사와 존귀를 돌리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조금 전에 말씀한 것처럼 하나님이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목적도, 우리를 하나님의 독생자의 피로 구속하여 주신 것도 인간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사 43:7에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내가 만들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어떤 분은 이런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너무 이기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이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때 인간의 참된 성품이 실현되고 완전한 자기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인간의 모든 삶이 정상적으로 되어가고 참된 만족과 기쁨을 얻게 됩니다. 마치 카메라 사진을 찍을 목표물(focus)에다 렌즈를 정확히 맞출 때 사진이 선명하게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제 친구가 음악을 아주 잘 하는데 연주회를 잘하고 큰 화환을 목에 걸고 많은 꽃다발을 받고 집에 돌아가서는 그렇게 허무하고 허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고전 10:31에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결혼하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첫째, 찬양으로 영광돌릴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전설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천지를 창조하신 후 천사들에게 '어떠냐?'고 물었을 때 '한가지 빠진 것이 있습니다. 창조주를 찬양하는 소리가 빠졌습니다'라고 했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음악을 만드셨는데 바람소리, 새들의 소리, 사람에게 노래의 소리를 주셨다고 합니다.

 예배순서에 송영(頌榮)이라고 하는 말은 찬송 頌자, 영광 榮자이고 영어로는 doxo-logy라고 하는데, 헬라어의 도그사(doxa)에서 나왔습니다. 찬송 부른 첫째 목적은 우리가 은혜받는 것보다 먼저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데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영광돌린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명예와 칭찬을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한편 성경은 나팔·비파·수금·현악·퉁소·제금·소고 등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또한 큰 소리로 온 마음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힘을 다하여, 노래하며 악기를 동원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려야 합니다.

 둘째, 감사로 영광을 돌립니다.

 여러분의 은혜를 입었던 사람 중에 누가 잊지 않고 찾아와서 진실된 마음으로 감사를 표현할 때 얼마나 기쁩니까? 이처럼 하나님도 우리가 그분이 베푸신 은혜와 축복들에 대하여 감사할 때 크게 기뻐하십니다. 시 50:23에 보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때로는 우리를 낙심하고 근심케 만드는 어려운 환경이나 우리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기 보다는 자기 형편과 처지를 들어 원망하고 불평할 때가 사실은 더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의 우리가 있게 된 것과 우리가 지금 누리는 그 모든 혜택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좋으신 우리의 아버지이심으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영광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참으로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며 기뻐하십니다. 반면에 불평, 불만과 원망이 많을 때 마귀가 기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할 수 있을 때 뿐만 아니라 감사할 수 없게 보이는 때에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 돌려야겠습니다.

 셋째, 몸으로 영광 돌립니다.

 고린도전서 6장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제물로 삼아(롬 12:1) 날마다 거룩하고 깨끗한 생활을 해야 우리 몸으로도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 몸을 창기와 합하여 음란하거나, 우리 몸에 술을 부어 술독을 만들거나, 입에다 불을 때서 굴뚝을 만드는 것은 망령된 행실입니다. 한편 마 5:16에는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앞에 비취게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몸으로 착한 행실을 나타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넷째, 물질로 영광을 돌립니다.

 고후 9:13에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물질을 죄 짓고 마귀를 좋게 하는 데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을 돌리는 데 쓰는 이가 있습니다. 오늘날 밥술이나 먹을만 하니까 육신의 향락을 위해 돈을 낭비하고 죄 짓는 데 돈을 허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성도들은 허리띠를 졸라매 가면서도 선교를 위해서, 구령사업을 위해서,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물질을 바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하늘 나라에 영원한 상급이 있고 세상에서도 엄청난 것으로 축복의 열매를 거둘 때가 있습니다. 롬 1:12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해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느니라"고 한 말씀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아니한 까닭에 인간들은 하나님이 원래 의도하신대로의 거룩한 성품이 이루어지지 않고 허망해지고 타락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할렐루야'를 찬양할 때 일어서게 된 유래를 말씀하려고 합니다. 1743년 3월 23일 영국 런던에서 헨델의 메시야를 연주할 때 많은 청중 가운데는 국왕도 앉아 있었습니다. '할렐루야'를 코러스로 부르는 도중에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하는 대목이 나올 때 너무나도 감동한 나머지 국왕이 벌떡 일어나자, 온 회중이 다 일어나서 노래가 끝날 때까지 앉지를 않았습니다. 그 후부터 '할렐루야'가 불려질 때면 '왕의 왕' '만주의 주'께 경배하고 영광돌리는 태도로 일어서서 하나님께 예를 표하는 관례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헛된 영광을 추구하려 하지 말고 더욱이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지도 말고 찬양과 몸과 물질로 항상 하나님께만 영광돌리는 성도가 도시기 바랍니다.
-아  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