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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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마음을 보시는 예수님 
 
 
 
[ 요한복음 12:1 - 12:8 / 찬송가 211 장 ]
 
잔치에서 예수님께 나드 향유를 부은 마리아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마리아를 향한 가룟 유다의 질책과 그 동기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마리아의 행동과 중심에 대한 예수님의 변호
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중심문단 ●1 Six days before the Passover, Jesus arrived at Bethany, where Lazarus lived, whom Jesus had raised from the dead. 2 Here a dinner was given in Jesus' honor. Martha served, while Lazarus was among those reclining at the table with him. 3 Then Mary took about a pint of pure nard, an expensive perfume; she poured it on Jesus' feet and wiped his feet with her hair. And the house was filled with the fragrance of the perfume. 
 
 
 

속마음을 아신 예수님
예수님은 유월절 엿새 전에 에브라임에서 베다니로 돌아와 나사로의 집을 찾으셨습니다. 그러자 그곳에서는 다시 살아난 나사로로 인한 감사의 잔치가 베풀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잔치의 절정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고 그 기름이 흘러내린 발을 자기 머리털로 씻김으로 최고의 사랑을 표현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나드 향유는 한 근이 무려 노동자의 1년 수입 총액에 해당하는 것으로 가장 귀한 분의 장례에서나 사용되는 물품이었습니다(7). 마리아가 이렇게 놀라운 헌신을 한 것은 자기 오라비를 살려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와 더불어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기 위함입니다. 평소 예수님의 말씀을 청종하던 그녀는 며칠 후에 영광의 주님이 인류의 죄를 위해 가장 비천한 죽임을 당할 것을 혼자서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은 마리아의 감사와 믿음을 기쁘게 받으셨고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그녀가 행한 일도 전파되리라고 축복하셨습니다(막 14:9). 예수님은 지금도 당신의 속마음을 헤아릴 줄 아시고, 진실한 감사로 헌신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마음과 말이 다른 가룟 유다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는 마리아를 향해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하며 격분했습니다(5). 겉으로 보면 그의 말은 정당하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의미 있게 물질을 사용하는 방법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의 본심은 겉과는 달리 더러운 탐욕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6). 그가 이렇게 비난을 퍼부은 것은, 돈궤를 맡고 있으면서 적지않은 돈을 유용하고 있었던 그에게 큰돈을 착복할 기회가 연기처럼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대로 두어라. 그는 나의 장례 날에 쓰려고 간직한 것을 쓴 것이다”라고 하며 마리아를 변호하셨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가장 검소하게 사신 분이지만, “가난한 사람은 항상 함께 있으나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라는 말씀으로 그녀의 예언적 행동을 지지해 주셨습니다. 사실 가룟 유다 같은 사람들의 말이 훨씬 논리정연하고 대중들의 공감과 지지를 끌어낼 때가 적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말이 얼마나 논리적인지가 아니라 숨은 동기를 보십니다. 사랑과 진실이 없는 달변은 악마적인 것입니다.

 

 

 
 
 
 
 
 

아크바인(Akhvakh People)


다우드는 그가 일군 당근 밭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는 이 땅에서 농사짓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란 것을 알았지만, 가족이 힘을 합쳐 결국 야채 재배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때 멀리서 말을 타고 친구 알리가 다가오자 그의 미소는 사라졌습니다. 알리는 지난달 당근을 재배하기에 적기라는 다우드의 말에 극렬히 반대했고, 다우드는 “다시는 알리와 어울리지 않겠다”며 몹시 분노했습니다. 다우드는 6,500명 아크바인 중 한 명입니다. 아크바인은 오랜 기간 노력한 끝에 척박한 땅을 풍요로운 농지로 변모시키는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하지만 북부 코카서스 지역 사람들의 특성상 자기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과는 절교하는 일이 많습니다. 아마도 다우드와 알리의 관계도 빨리 회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깨어진 관계에서 기인한 상처는 다음 세대에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 갈등으로 지쳐 있는 아크바인의 마음을 만져주시사 이들이 예수님 안에 온전히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되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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