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의 성품과 그의 생애는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 받아들여지고 또 그것이 우리의 내부에서 연합되어 가는 과정을 교훈으로 전해 주고 있습니다. 가나안이란 땅은 더 나은 땅, 또는 하나님께서 친히 '나의 휴식처'라고 지정하신 곳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휴식처는 게으르거나 편하게, 그리고 수고하지 않아도 배부르게 되는 곳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노력과 담대한 투쟁, 그리고 승리했을 때에 주어지는 곳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는 하나님의 목적과 그의 계획에 참여하는 것을 말하며 그리하였을 때 찾아오는 조용한 휴식은 그분에 의하여서만이 가능하고 그분의 약속에 의해서만이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조용한 휴식 속에서 쉼을 얻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다음과 같은 삶입니다.
1.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사는 믿음의 삶입니다.
'네 발 아래 있는 모든 것은 내가 너에게 준 것이다'라는 이 말씀에 대한 확고한 신앙이 없이는 이 같은 축복은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땅들은 베일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주를 믿는 반석 위에 신앙의 터를 닦은 자가 아니면 이 땅들은 그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숨겨진 광활한 땅들은 오직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는 자들에게만 보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와 축복은 여름의 우기에 강물이 넘치는 정도와 같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가까이할 수 있는 축복도 아무나 보고 취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문에 널려 있는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을 발견한 자는 복된 자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든든함을 가지고 담대해져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명령 한마디에 일언반구의 대꾸나 질문도 없이 깊은 물위에 용감하게 걸었습니다. 동시에 신앙이란 훈련되어져 감에 따라 감당할 만큼의 시험들을 극복하여 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 시험은 미리 하나님에 의하여 예비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든든해진 신앙의 힘으로서 우리 앞에 놓여진 여리고 성도, 요단 강 물도, 또한 그보다 더 어려운 장애라 할지라도 우리는 족히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인 앞에는 불가능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신앙을 계속 유지하여 가야 합니다. 이는 마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닿았을 때물이 갈라지고 그들이 물 한가운데 거할 동안 요단강이 감히 합쳐지지 못했던 사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사는 믿음의 삶입니다. 우리는 이 귀중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어려움 앞에서는 더욱 닦아 빛을 발하고 녹이 슬지 않도록 유지시켜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2. 그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신실하게 성별되는 삶입니다.
아이 성의 실패에서 우리가 살펴보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실패했던 결정적 사연은 완전하게 성별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이에 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완전한 성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구별된 삶, 즉 성별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이 필요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율법의 책을 무리의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며 지켜 행하여야 할 것임을 여호수아 1장 8절에서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의지와 그분의 마음에 무조건적인 복종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1장 7절에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은 곧 하나님에게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며 많은 어려움과 시험들은 바로 이 정도(正道)에서 한쪽으로 치우쳐 이탈되는 무지에서 일어납니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의 연약한 마음을 가지기 쉽습니다.
3) 또 신앙인의 삶은 우리 자신을 성화시켜 가는 삶입니다.
이 성결한 삶은 우리가 하나님의 이적을 보기 위해서 필수적인 요건이 됩니다. 이 성화는 자신을 하나님과 연합하여 가는 삶에서 가능한 것이며, 세상의 삶으로부터 구별하려는 자신의 의지가 동반될 때 얻어지는 축복입니다.
3.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확신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에게 확신과 안녕을 가져다줍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고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며, 네가 살아 있는 동안에 모세와 함께하였던 것처럼 너와도 함께하겠다'라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은 얼마나 은혜가 넘치고 자비로운 말씀입니까? 때문에 우리는 안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약속에 의한 성도들의 사랑은 자신의 아들로서의 사랑,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이 같은 자비로운 임재하심은 우리 속에서 실재하는 것으로서 이는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으며, 그리하여 그는 말하기를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너희 가운데 계시다'라고 하였습니다. 한편 하나님의 백성의 군주이자 총사령관이 된 여호수아 앞에 돌연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가 신고 있는 신발을 벗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 갑작스럽게 부각되는 장면에서 보여준 여호수아의 순종적 자세는 하나님 앞에 서야 할 모든 신앙인들의 자세에 대한 전형이 제시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 군대의 총사령관이 시키는 대로 꿇어 엎드려 경배하고, 또 그의 신발을 벗었습니다. 신을 벗는다는 것은 이제는 주님이 주인이며, 자신은 종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전에는 내 마음대로 다녔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뜻대로만 움직일 것이라는 뜻도 됩니다. 바로 이 같은 순종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존 기간 동안 그와 함께하셨습니다. 여호수아의 죽음에서 증거되어지는 것은 '네 하나님 주께서 너를 대신하여 싸웠고, 이는 그의 약속하셨던 바로써 그대로 실행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수아 그는 이 같은 약속의 신앙에 충실한 생애를 살았던 자였습니다.
4.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증거로의 삶입니다.
여호수아의 생애 전체가 하나님을 증거키 위한 삶이었습니다. 특별히 그가 길갈에 새운 열두 개의 기념 돌비는 하나님의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믿는 자들에게 전능자로써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특수한 증거였습니다. 이 열두 개의 돌비석을 세우는 것은 믿음의 작업이었고, 이것이 완성되어 세워졌을 때 이를 보는 다른 이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에 대한 그의 결론적인 충고의 말은 '전능자 너의 하나님을 영원히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 말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적용되어지며 모든 민족에게 역시 똑같이 적용되어져야 합니다.
5. 그것은 적과 대항하여 투쟁하여 가는 삶입니다.
여호수아가 기념의 열두 돌을 세우고, 즉시 그곳을 통과할 때에 그는 여리고 성이 굳게 닫혀 있음을 인식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여 주신 땅을 얻은 하나님 의지의 실현에 장애가 발생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곧 침략적 공격이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적들은 크고 수효도 많았습니다. 모든 왕들이 모여서 연맹을 맺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하는 것에 동의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싸우고자 모여든 왕은 여러 가지 모양의 왕들이었습니다. 안락의 왕, 자존심의 왕, 색욕의 왕, 공포의 왕, 그리고 쾌락의 왕들이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또한 거기에는 세속의 왕, 진리를 미워하게 하는 왕, 유행의 왕, 어두움을 사랑하는 왕, 그리고 불신앙의 왕들도 합세하여 공격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왕들은 우리들의 싸워 투쟁해야 할 적들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들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6.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삶입니다.
'너의 삶이 계속되어지는 날 동안에 아무도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곧 승리로써 채워져 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아이 성에서처럼 실패나 패배를 하는 삶을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면 이는 우리의 죄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장벽이나 장애물들은 신앙의 능력으로써 능히 깨뜨리고 넘어설 수가 있습니다. 모든 대적자들이 죽임을 당하게 될 때에 그들의 땅은 하나님의 축복으로서 당신의 백성들의 기업으로 주어집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하나님의 가공할 진노는 적들을 완전하게 소멸시켜 주십니다. 만약 우리의 삶이 아직도 승리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 못하다면 이는 우리의 신앙과 마음의 자세를 다시 한 번 검토하는 면밀한 점검과 신앙의 반성이 요구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추구하지 않고 승리를 원하였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7. 그것은 신앙 안에서 휴식을 누리는 삶입니다.
그들은 땅을 분배한 후에 전쟁으로부터 멈추고 이제는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이 휴식은 하나님으로부터 얻은 축복의 휴식입니다. 왜냐하면 그 땅은 그들이 경작하지 않은 땅이었고, 그들이 취한 성읍들과 포도원은 그들이 건설하지 않은 것이며, 그들이 가꾸지 않은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처럼 가꾸지 않고 심는 땀을 흘리지 아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로써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라도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에서 휴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에게 축복으로 주실 땅은 많이 남아 있지만 이제 우리는 주 안에서 휴식을 누립니다. 만약에 충분한 휴식으로서의 우리의 시간이 짧다고 느낀다면 우리가 소유한 모든 나머지 시간들로 즐거운 것이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작은 불안과 공포, 근심이 씨가 되어서 그의 심중과 생활의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 안에서 휴식을 누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