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죽은 후 즉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부르셨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역자를 장사 지내셨으나 그 사역까지 장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엘리야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하늘로 올라갈 때에 그의 망토 자락을 엘리사 위에 남겨 두고 갔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목적과 개혁은 여전히 다른 자들을 통하여 길러지고 가르쳐져 다시금 잉태되어 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역의 지속은 하나님의 의지를 실현하는 그 날까지 영원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일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이며, 실패란 있을 수 없고 오직 완성만을 향하여 운동되는 성질의 것입니다. 이 같은 무한한 하나님의 일을 계승하고자 하는 자는 그분의 뜻 앞에서 자신의 뜻을 포기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길을 따라서 걸어가는 자라야만 합니다. 하나님 그분의 편에서 볼 때, 모두가 하나님의 의지를 존중하고 그분의 목적에 따라 계승하여 나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기대하고 있으며, 이를 즐거워하십니다. 본문에서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교훈은 선한 승계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와 그것에 지혜롭게 응답하여 나아가야 할 우리들의 자세에 대한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목적을 이해하는 자라야 합니다.
주님은 여호수아에게 '일어나 요단강을 건너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주님의 명령에 대하여 그는 '주님 막연히 건너가라고만 말씀하시니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이 강을 건너야 할는지요?'라고 반문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여호수아의 신앙에서 주님의 이러한 명령은 한 치의 의심이나 염려도 용서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길을 완전하게 평탄한 길임을 신앙으로 확신하였으며, 그의 당면한 문제는 온전하게 주님의 의지에 순종하는 것뿐임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소명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없다면 모든 일에 있어서 불안하게 되고 이 불안은 실제로 모든 일들을 불완전하게 만듭니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의심이 뒤따르게 되고 마침내 소명감에 대한 첫사랑을 잃고야 맙니다. 그러나 전적으로 주님의 목적을 이해하고 그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자는 확고한 믿음을 잃지 않는 자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지금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지, 당신의 뜻과 의지가 지금 나에게 어떻게 적용되어져 가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이해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2. 하나님의 약속을 신앙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너희의 발이 밟고 있는 모든 지역을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고 주님은 여호수아와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그들이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 실체화되는 것이며, 가능성에서 현실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땅은 곧 그들이 밟고 있는 것만큼이나 청구할 수 있는 권리로 바뀌어 갔습니다. 모든 약속에 대한 청구는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신 것으로서 이는 당연한 것입니다. 단지 믿음으로써 그 약속을 받아들일 때 만이라는 전제가 붙을 뿐입니다. 믿음을 갖게 될 때, 즉 약속을 신앙할 때 그 약속은 즉시로 우리에게 청구 권리가 됩니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천국의 땅이 부족할 것이라는 의심을 하여 그곳에 자신의 땅을 만들어 놓지는 못하였는지 자문해 보아야겠습니다.
3. 하나님의 동행을 확신하는 자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모세와 함께했던 것처럼 여호수아에게도 함께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너를 혼자 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여호수아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이처럼 세 번을 반복하여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곧 무진장한 유산으로의 신앙이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의 축복은 내가 비록 악의 깊은 수렁 속에 빠져 있을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거하심을 믿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4. 하나님의 이름으로 대담해지는 자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되면 우리들에겐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거대한 대적들 앞에서도 사자와 같이 포효하며 용감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어떻게 하여 팔백 오십 명의 거짓 예언자들 앞에 직면하여서도 그처럼 담대하게 설 수가 있었겠습니까? 우리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확고하고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것보다 더 큰 일도 행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안에서, 그의 전능하신 능력 앞에서 담대하여져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강하게 붙잡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는 신앙의 고백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는 자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곧 우리의 길을 곧게 하여 주실 것임을 확약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바른 길, 즉 하나님으로의 정도를 사수하여 나가는 우리들에게는 그것에 응분하는 상급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모범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삶을 보고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실로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에 자신을 헌신시켰으며, 삶은 그분에 대한 영광을 돌리기 위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분이 말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신 모든 것은 그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하심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인도되기 때문입니다.
6.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기뻐하는 자라야 합니다.
본문 8절에서 살펴보면 '하나님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책을 읽기에 즐겨 하며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 나가라'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이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과실을 맺고 그 잎이 마르지 않은 것과 같이 성경 속에 있는 진리는 그것을 발견한 자에게만 진리가 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선한 것을 심은 자는 선한 사람들처럼 선한 것을 낼 수가 있습니다.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있지 않은 자에게는 말씀을 통한 성령의 사역이 있을 수 없으며, 그를 의롭게, 지혜롭게 만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그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란 이름을 갖고 있다고 요한계시록 19장 13절은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7.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자라야 합니다.
만약에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복종하지 않고 온전한 순종을 결여한 생애를 살았다면 그의 생애는 하나님 앞에서 불완전한 생애를 살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지 앞으로 우리의 뜻을 양도하는 것은 마치 자연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하여 공기를 호흡해야만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고도 필수 불가결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여호수아에게 한 대답은 우리들이 우리의 주인이시고 인도자이신 분에게 하여야 할 말이기도 합니다. 그 백성들이 여호수아에게 한 말은 '당신이 우리에게 어떠한 명령을 내리든지 우리는 그대로 행하리이다. 당신이 우리를 어디로 보내든지 우리가 그리로 가리이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그 길은 풍요한 길이 될 것이며, 형통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위대한 모범이신 그리스도, 그분은 죽음 앞에서까지 아버지에게 복종하셨습니다. 어떠한 경우에서든지 '그분이 하시는 말을 듣고 그에 순종하며 그대로 행하라' 이 말씀을 우리가 진리로 받아들이고 행하여야 할 것이며, 이로 인하여 우리는 지혜롭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