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부활절 말씀집회 ‘가상칠언’

제목 :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용조 목사 / 눅 23:32-42 /

우리는 고난 주간을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난당하신 사건을 기억하면서 보냅니다. 이것
은 영광스러운 부활에는 치욕스러운 십자가 고난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난 없는 영
광은 없고,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고난이 깊을수록 영광은 더욱 찬란하고, 십자가 길
이 험할수록 부활의 기쁨은 풍성합니다.

고난의 흔적이 있는가?

오늘날 기독교와 크리스천의 최대위기는 바로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이 없다는 것입니
다. 나를 위해, 내 가정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아픔을 겪지만 마태복음 5장에서의 “의
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위해 고난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공허하고,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공허합니다. 내가 손해보고 고통
을 겪고 눈물을 흘리고 아파하는 그런 고난의 흔적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1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
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본
받아 그 자취를 따라가야 합니다. 당신의 삶과 육체에 예수님 때문에 시간을 빼앗기고 돈을
잃고 수모를 당한 고난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실 때까지 여섯 시간동안 일곱 마디 말을 하셨습니다. 그
리스도의 고난의 정체, 본질, 우리가 따라가야 할 모법이 이 일곱 마디에 있습니다.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대부분 사람들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고문을 당하면 화가 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기도하러 가셨다가 갑자기 체포당해 빌라도 총독에 의해 불법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예
수님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두 흉악한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처형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그 순간,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우리는 간혹
용서를 해도 시간이 흐른 뒤에 합니다. 일단 맞을 때는 화를 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
자가에 못 박힌 후 처음 말씀하신 것은 놀랍게도 용서의 메시지였습니다. 32~34절을 보겠습
니다.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
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
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쌔

십자가에 대한 예수님의 첫 번째 반응은 원망과 저주, 분노와 복수가 아니었습니다. 자기
인생이 갈기갈기 찢고 폭력을 행하며 조롱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첫 번째 반응은 “아
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나이
다 이었습니다 ” . 이것이 오늘 고난주간을 맞이하며 배워야 할 첫 번째 교훈입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십자가의 첫 번째 훈련은 용서입니다. 기독교의 본질, 십자가의 본질은
용서입니다. 참된 구원은 용서로부터 시작됩니다. 용서는 죄를 덮고, 죄를 치워우고, 대가를
지불합니다. 이 용서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고 뼈가
으스러지고 살이 찢겨져 움직일 때마다 온 몸에 고통이 전율처럼 느껴지는 바로 그 순간에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보복이 아니라 용서입니다.

두 번째, 용서는 율법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법과 정의에는 용서가 없습니다. 법대로 하면
여러분이나 저는 다 죽었습니다. 은혜로 했기 때문에, 실수를 용서하고 허물을 감추어 주었
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온 목적은 온 인류의 죄를 구원하시고 또 용서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십자가는 바로 용서의 상징입니다. 우리의 최대 숙제는
용서입니다. 용서는 내가 나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데부터 시작합니다. 자신을 용서하십시
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자기 가족을 용서하십시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고난의 흔적을 따라
가는 것은 당신이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예수의 이름으로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행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스데반입니다. 그는 돌에 맞아 죽어가는 순간에 예수님과
동일한 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는 여러분도
오늘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예수님과 똑같은 기도, 스데반과 똑같은 기도를 드리기를 축원
합니다.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십자가 상에서 바로 그 기도를 하고 있는 순간 예수님 주변에는 두 강도가 있었습니다. 39
절에서 43절입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
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
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
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
리라 하시니라

예수님 옆에 두 강도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회개하지 않은 흉악한 강도요, 또 한편은 회개
한 흉악한 강도였습니다. 흉악한 강도라는 점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진노의 자식이며
흉악하고 마땅히 죽어야 할 인간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과 운명입니다. 진리이신 에수님
앞에서 더 펄펄 뛰고 진노하는 죄인인가, 아니면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잘못된 것을 회개하는
죄인인가 하는 차이일 뿐입니다.

한 강도는 펄펄뛰며 “네가 그리스도냐? 그렇다면 너도 살고 나도 살려봐라”하고 예수님께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다른 강도는 자기가 살아온 모든 흉악한 인생을 회개하며 “예수여, 당
신의 나라에 임할 때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바로 응답합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를 배웁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즉각적으로 반응하셨다는 것입니다.
한 강도가 구원을 요청했을 때 주님은 즉각 그 영혼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낙원을 약속하셨습
니다. 여기에 구원의 긴박성과 구원의 절박성을 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구원을 요구하는 그에게 아무 요구도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예
수님은 그에게 ‘죄를 회개하라. 거듭나라. 착한 일을 해라. 새벽기도 가라. 십일조 해라’ 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잘못된 과거에 대해서도 질문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요구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바라보고 간구하는 것으로
필요충분조건이 다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도할 때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하는 올무를 놓지 마십시오. 그냥 예수님을 직접 만나게 하십시오. 우리 주위에는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아와야 할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를
즉각 예수님과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축복
우리는 오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두 가지 말씀을 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첫째는 용서의
기도였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두 번째는 구원의 메시지였습니
다. “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오늘 이 두 가지를 계속 연습하십시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에게 전화하십시오. 마음을 푸
십시오. 용서는 하기로 결정하면 간단합니다. 여러분의 힘으로는 못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
로 용서하십시오. 여러분의 능력으로는 전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도하십시
오. 친구의 영혼을 기다리지 마십시오. 오늘 가서 전도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축복입니다.

* 출처 : 온누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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