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절 말씀집회 ‘가상칠언’]
둘째 날 :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용조 목사 / 요 19:25-27, 마 27:45-50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는 곧 죽음을 의미합
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깊이 묵상하는 이유는 온 인류를 부활로 이끄는 하나
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두 손과 두 발을 나무십자가에 못 박히고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고 처형당했습
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을 때 일곱 마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이 우리 삶
에 지침이 됩니다. 고난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고난이 어떻게 복이 되는지 알게 됩니다. 우리
를 위해서 예수님은 고난 중에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말씀
예수님의 일곱 마디 말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 말씀이 사람을 살리는 말이고 긍정적인 말이
며 살아있는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용서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죽이는 자. 조롱하는 자들을 향해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
분도 고난을 겪을 때 이런 용서의 말을 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을 모독하고 괴롭히고 삶
을 흐트려 놓은 사람을 위해 용서와 축복기도를 하는 믿음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두 번째로 하신 말씀은 구원의 말씀입니다. 십자가에 처형당하실 때 옆에 흉악한
강도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회개하지 않고 예수를 조롱했으나 또 한편의 강도는 눈물을
흘리며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예수님,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나는 살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흉악한 죄인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주저하지 않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고 축복과 구원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여러분이 고난을 겪을 때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손
을 벌릴 때가 있습니다. “나를 도와주십시오. 나를 구원해주십시오.” 그때 여러분은 구원의
손을 펼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오늘 나눌 세 번째 말씀은 효도의 말씀이고 네 번째 말씀은 고뇌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9장 26절~27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
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 밑에는 사랑하는 제자와 네 명의 여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밑을 내려다보니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를 의지하여 서있는
모친 마리아였습니다. 많은 조롱을 당하신 후에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은 얼마나 힘들고 아
프고 경황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고통 중에도 육신의 어머니를 보고 마음이 아팠
습니다. 어머니의 눈빛을 맞추면서 말씀하십니다. “어머니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그것은 자
신을 두고 한 말일 수도 잇고 제자를 보고 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원문을 보면 문맥이 둘
다 동일합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나는 불효자식입니다”라는 말입니다.
어머니를 생각하신 예수님
어머니 보다 먼저 죽으면 불효입니다. 어머니 눈에서 눈물이 나게 하고 가슴에 멍들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머니 나는 죽지만 상심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제 제자가 어
머니를 잘 돌볼 것입니다”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어머니를 깊이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
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해서 십자가를 지지 않으시거나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지는 않으셨습니다. 그
러나 어머니를 생각하는 예수님에게 인간적인 사랑,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발견합니다.
선교사님들이 선교지에 갈 때 늙으신 부모님을 두고 떠나는 것을 가장 힘들어합니다. “경제
적 능력도 없고 늙으신 부모님을 돌봐드려야 하는데 내가 선교지로 가면 이분들은 어쩌나”하
는 생각으로 괴로워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이 말이 우리에게 얼마나 희망과 용기와
위로를 주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도 육신의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예수
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여러분도 가족을 돌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고뇌
예수님의 네 번째 말씀이 아주 중요합니다. 고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쉽게 우리를 사랑
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는 고통과 아픔이라는 대가를 치렀습니다.
고뇌가 없는 사랑은 감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손해와 희생과 대가와 고뇌가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7장 45절을 보십시오.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유대인의 육시는 12시, 구시는 3t입니다. 정오부터 해가 빛을 잃고 3시간동안 침묵했습니
다. 하늘도 땅도 예수님도 모든 사람들이 침묵했습니다. 3시 즈음에 예수님이 큰 소리를 지
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말은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
이까”라는 뜻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런 절규와 고뇌의 언어를 십자가상에서 하셨을까요?
이 말은 고난을 겪고 있는 예수님께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첫째는 예수님께서 한 순간도 하나님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식의 세계나 무의식
의 세계에서도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전부였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
는 단어가 먼저 나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셨고 포기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현실입니
다. 그러나 십자가위에서 예수님이 외친 말은 ‘나의’ 하나님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왜 나를 버리십니까’라는 감정을 예수님이 가지셨습니다. 고뇌를 하셨다는 말입니다. 여기
서 우리는 중요한 메시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고뇌에 찬 고백을 하면서도 예
수님은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확실하다는 고백입니다. ‘인류를 위해 진짜 나
를 버리셨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나를 버리셨다면 하나님이 저들을 정말 사랑하시
는 군요’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시편 22편에 정확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
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
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6~7절, 14~19절에도 예수님이 당한 고난과 조롱이 극명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시편 22
편을 보면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는 말은 이 시편을 요약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한 것을 보십시오. 개들이 나를 핥는 것 같고 사람들이 나를 조롱하고
비웃고 날이 갈수록 더 처절하고 괴롭고 죽고 싶은 것을 시편에 썼습니다.
고통 중에도 ‘나의 하나님’
시편 22편이 있기에 시편 23편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맛본 사람만이 ‘나의 목자’라
고 부를 수 있습니다. ‘나의 목자’라는 말이 ‘엘리’라는 말입니다. 고통 속에서 견딜 수 없을
때에도 ‘나의 하나님’이라는 말을 빠뜨리지 마십시오. 어렵고 힘들때 일수록 교회에 나오십시
오. 하나님을 꼭 붙잡으십시오. 사람들이 나를 조롱하고, 잘 되는 일이 없어도 ‘내 하나님’이
라고 부르십시오. 이런 사람에게 ‘나의 목자’라는 응답이 있습니다.
고뇌의 그리스도. 예수님은 함박웃음을 짓고 계신 분이 아닙니다. 진땀, 피땀을 흘리며 고통
중에 한숨과 소리를 지르신 분입니다. 여러분과 제 고난을 대신 지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이해되지 않고 해석되지 않고 견딜 수 없어도 하나님을 붙잡으십시오. 예수님도 이런 고뇌
의 경험을 하셨고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 시간은 통과해야만 합니다. 그 시간을 통과할 때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온 인류를 구원했듯이 여러분의 고난은 여러분의 주변사람을 구원할 것이
고 가정을 구원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고난은 이 민족을 구원할 것입니다.
* 출처 : 온누리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