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고 담대하라! (수 1:1-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 1:9) 옛날에 어떤 사람이 마차를 몰고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가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길가에서 제발 태워 달라고 애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차에 태워 한참 가다가 그 할머니를 자세히 보니 어찌나 무섭고 흉칙하게 생겼는지 보통 사람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도대체 누구요?' 하고 물어 보았더니 그 할머니가 하는 말이 '나는 호열자 귀신이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장 내리라고 하니까 '더도 말고 꼭 다섯 사람만 죽일 것이니 좀 태워다 주시오' 하면서 내리지 않기에 하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신분은 대개 낮고 천했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이러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신분을 노골적으로 표현합니다. 그것은 그들을 얕잡아보거나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바울은 오히려 그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밝힘으로써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얼마나 영화롭게 하셨는가를 깨닫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바울은 구원에서 제외된 세상의 지혜자와 권세자의 비참한 최후를 생각게 함으로써 고린도 교인들에게 더욱 겸손할 것을 요구합니다. 본문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고린도 교회의 구성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26절). 당시 고린도 교회의 구성원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당시의 여러 교회들..
정신적 장애를 극복하라 (고전 1:26-31)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전 1:27) 몸이 불구가 된 사람은 자칫 정신적인 장애자까지 되기 쉽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고 과감히 도전하는 용기를 길러 주기 위한 목적에서 장애자 올림픽과 같은 행사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몸은 불구가 아니면서 정신적인 장애자가 되어 열등감 속에서 마음이 뒤틀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에 나환자촌에 부흥회 인도하려 갔던 일이 있는데 가자마자 담임 목사님이 부탁하기를 절대로 '문둥이'란 단어나 '나환자'란 말은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약점이나 단점을 말하면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하고 자존심이 상해서 은혜도 못..
예수님을 만나보자 (요 12:21) 저희가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요 12:21) 어떤 사람이 비범한 일을 했을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을 보고 싶어 합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파리와 비엔나, 런던에 갔을 때 가는 곳마다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이 그를 보려고 몰려 들었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서울에 왔을 때도 서울 시내에 차가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었습니다. 하다못해 복싱 선수인 알리를 보려고 얼마나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는지 모릅니다. 세례 요한도 그의 모습과 메세지가 보통 사람과 같지 않았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려고 모여 들었던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비범한 일을 행하는 사람을 가까이서..
믿음의 실상 (막 11:24, 히 11: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어떤 곳에서 두 사람의 사형수에서 사형을 집행하면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해보았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눈을 가리우고 팔을 걷고 큰 주사기를 가지고 혈관에서 피를 뽑아서 죽게 하면서 그것을 보고있던 다른 사형수도 눈을 가리고 팔을 걷고 이번에는 정말 피를 뽑는 것이 아니라 피를 뽑는 체하고 물을 담았다가 주루룩 주루룩 그릇에 뽑는 소리를 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사실은 피는 한 방울도 안뽑았는데 하나 둘 세어서 먼저번 사람이 죽은 횟수가 되니까 얼굴이 하얗게 되더니 결국 죽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이를 보면 사람의 마음과 생각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한편 이와는 반대로 긍..
[부활절 말씀집회 ‘가상칠언’] 셋째 날 : 다 이루었다 하용조 목사 / 요 19:28-30 /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일곱 마디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용서의 메시 지를 주십니다. 용서는 구원의 시작이요 완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제일 처음 용서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두 번째 말씀은 전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회개한 강도가 구원을 간절히 요청했을 때 예수님 은 즉각 응답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힘들고 괴로울 때, 이 메시지를 기억하십시오. 세 번째 메시지는 참으로 인간적입니다. 예수님은 위대한 일을 하고 있었지만 육신의 어머 니를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큰일을 할지라도 가정보다 크지 않습니다. 가정을 지키십시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면서 사랑하는 제자에게 어머니..
[ 부활절 말씀집회 ‘가상칠언’] 둘째 날 :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용조 목사 / 요 19:25-27, 마 27:45-50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는 곧 죽음을 의미합 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깊이 묵상하는 이유는 온 인류를 부활로 이끄는 하나 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두 손과 두 발을 나무십자가에 못 박히고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고 처형당했습 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을 때 일곱 마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이 우리 삶 에 지침이 됩니다. 고난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고난이 어떻게 복이 되는지 알게 됩니다. 우리 를 위해서 예수님은 고난 중에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말씀 예수님의 일곱 마디 말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 말..
부활절 말씀집회 ‘가상칠언’ 제목 :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용조 목사 / 눅 23:32-42 / 우리는 고난 주간을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난당하신 사건을 기억하면서 보냅니다. 이것 은 영광스러운 부활에는 치욕스러운 십자가 고난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난 없는 영 광은 없고,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고난이 깊을수록 영광은 더욱 찬란하고, 십자가 길 이 험할수록 부활의 기쁨은 풍성합니다. 고난의 흔적이 있는가? 오늘날 기독교와 크리스천의 최대위기는 바로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이 없다는 것입니 다. 나를 위해, 내 가정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아픔을 겪지만 마태복음 5장에서의 “의 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위해 고난을 받..
모세가 죽은 후 즉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부르셨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역자를 장사 지내셨으나 그 사역까지 장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엘리야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하늘로 올라갈 때에 그의 망토 자락을 엘리사 위에 남겨 두고 갔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목적과 개혁은 여전히 다른 자들을 통하여 길러지고 가르쳐져 다시금 잉태되어 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역의 지속은 하나님의 의지를 실현하는 그 날까지 영원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일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이며, 실패란 있을 수 없고 오직 완성만을 향하여 운동되는 성질의 것입니다. 이 같은 무한한 하나님의 일을 계승하고자 하는 자는 그분의 뜻 앞에서 자신의 뜻을 포기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의 성품과 그의 생애는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 받아들여지고 또 그것이 우리의 내부에서 연합되어 가는 과정을 교훈으로 전해 주고 있습니다. 가나안이란 땅은 더 나은 땅, 또는 하나님께서 친히 '나의 휴식처'라고 지정하신 곳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휴식처는 게으르거나 편하게, 그리고 수고하지 않아도 배부르게 되는 곳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노력과 담대한 투쟁, 그리고 승리했을 때에 주어지는 곳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는 하나님의 목적과 그의 계획에 참여하는 것을 말하며 그리하였을 때 찾아오는 조용한 휴식은 그분에 의하여서만이 가능하고 그분의 약속에 의해서만이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조용한 휴식 속에서 쉼을 얻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다음과 같은 삶입니다. 1..
강하고 담대하라! (수 1:1-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 1:9) 옛날에 어떤 사람이 마차를 몰고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가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길가에서 제발 태워 달라고 애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차에 태워 한참 가다가 그 할머니를 자세히 보니 어찌나 무섭고 흉칙하게 생겼는지 보통 사람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도대체 누구요?' 하고 물어 보았더니 그 할머니가 하는 말이 '나는 호열자 귀신이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장 내리라고 하니까 '더도 말고 꼭 다섯 사람만 죽일 것이니 좀 태워다 주시오' 하면서 내리지 않기에 하는..
깊이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사랑을 받는 자는 사랑하는 이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을 넘치도록 풍성히 받는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하나님은 벌써 오래 전에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방법을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성경 안에서 또한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함께 상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피조물로서의 우리 1)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습니다. 창 1:26에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래적인 창조의 모습입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피조물입니다(참조, 창 5:..
기독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에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통해 구원을 얻고자 함에는 반론이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구원은 어떻게 얻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옛날부터 두 가지의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의 선행에 강조점을 두는 입장으로 유대주의를 비롯하여 펠라기우스를 거쳐 알미니안주의로 확립된 입장이며, 둘째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주장으로 루터와 칼빈으로 이어져 오늘날 칼빈주의로 대변되는 견해입니다. 그러면 이 두 입장과 본문이 말하고 있는 구원에 대해 살펴봄으로 구원의 본질을 파악해 보겠습니다. 1.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입장 1) 유대교의 율법주의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견해는 유대교의 율법주의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인간이 하나님..
1-3절에서 바울은 예수를 믿기 전의 우리의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그 모습은 전혀 소망이 없는 절망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죄와 허물로 이미 '죽은' 존재였고 스스로 살아날 가망성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곧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가 되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본문은 그 이유를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죄와 허물로 죽어버린 우리를 그리스도를 살리실 때 함께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은 풍성하신 긍휼을 가지셨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하나님은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긍휼이란 주어진 환경을 극복할 힘이 없어 힘에 부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
에베소서 가운데 본장은 구원론을 논한 것이고, 본문은 인간의 구원전의 상태를 논하는 것입니다. 구원 전에 우리는 과연 허물과 죄로 죽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담의 후손으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죄 아래 있다고 선언되었기 때문입니다(참조, 롬 3:9). 이와 같이 우리의 구원받기 전의 상태는 사탄의 지배 하에서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며 불순종의 영의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만세 전부터 계획하신 예정이 있어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푸심으로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살펴보겠습니다. 1. 새 생명의 시작은 죄로 죽었던 자신을 ..
은혜를 아는 은혜 (엡 2:1-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 또 다시 새로운 달이 주어졌습니다. 따스한 햇살이 주님의 따사로운 사랑과 은혜를 더욱 깊이 느끼게 하는 4월의 첫날을 맞이한 것입니다. 지나간 3월은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이제 마음을 정돈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새달에 충실하기로 합시다. 특별히 새로운 삶을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우리는 흔히 은혜를 받았다. 은혜가 풍성하다는 등의 은혜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은혜가 무엇입니까? 의미는 대개 알고 있지만 그 뜻을 말하라면 분명하게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이론적 철학이나 헛된 속임수를 조심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례의 본뜻이 무엇이며 세례는 우리를 어떠한 상태로 만들며 세례가 주는 소망은 무엇인가를 제시해 줍니다. 그리고 세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깊게 관련됨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어떻게 세례가 십자가와 깊이 관련되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세례는 십자가의 승리를 나타내는 징표입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에서 세례를 예수님과 세례자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므로 장사지낸바 되고, 죽은 자 가운데서 제일 먼저 살아나신 예수와 함께 부활하는 표로 설명합니다(참조, 롬 6:2-5). 사도 바울은 성도의 세례와 그리스도의 죽음을 같은 의미로 보고 있습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우리 ..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이 성취하신 일 (골 2:12-15)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2) 소나 말이나 개같은 짐승은 물에 빠지면 수영을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도 물에 떠서 자연스럽게 헤엄을 치는 반면 사람은 처음 깊은 물에 빠지게 되면 허우적거리다가 그만 가라앉아 죽고 맙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은 물을 두려워하여 물에다 몸을 맡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수영을 배우려면, 제일 먼저 숨을 들이쉬고 몸을 물에다 맡기는 법을 배우고 나서 몸이 뜨게 되면 손발을 움직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 때에 몸을 물에다 완전히 내맡기지 않고 몸에다 힘을 주게 되면 중심을 잃게..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탄생하신 이야기에 대한 기록입니다.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은 미가 선지자에 의하여 메시아가 탄생될 곳으로 예언되었으며(참조, 미 5:2), 본문에서 그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그 구속사적 직분에 대하여 상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예수께서 탄생하신 곳 1) 베들레헴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11절). 위에서 살펴본 대로 베들레헴은 '다윗의 동네'로서 메시아가 탄생할 고장으로 예언된 곳입니다(참조, 미 5:2). 당시에 예수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는 정혼한 사이였고 나사렛에서 목수직을 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로마 황제 아구스도가 세금 징수를 위한 목적으로 호적령을 내려 이들은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오지 ..
말구유에 누우신 예수님 (눅 2:1-7)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눅 2:7) 요즈음은 이사철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집을 옮기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더 좋고 큰 집에서 살기를 원하고, 그래서 사는 동안 사람들은 점점 더 집을 크게 늘려ㅓ 이사를 다니곤 합니다. 물론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이 보다 편안하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닌데도 불구하고 겉모습을 중요시하는 세상 사람들은 크고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을 자랑삼고 뿌듯해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말구유에서 탄생하시고 거기에 누우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무렵 로마황제 아구스도가 호구조사령을 내려서 저마다 본 고장으로 호적..
제목 : 가상칠언 (1) 말씀 : 누가복음 23:23-34, 요한복음 19:26-27 십자가의 도 열 네번째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십자가상에서 일곱 마디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과거를 회상하며 유언을 남기듯이 예수님께서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운명하시기 전까지의 모든 일을 회상하여 종합적인 것을 일곱마디 말씀에 담으 신 것입니다. 이를 가상칠언이라고 하는데 오늘은 그 중에서 세마디 말씀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1. 제 1 언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 이니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 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는 중보기도였습니다. 여..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 선교를 마치고 거기서 동남방으로 약 140km 지점에 있는 이고니온 선교에 착수했습니다. 그들은 여기서도 주로 유대인의 회당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 결과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의 많은 무리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1절). 그러자 강퍅한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에게 혐오감을 갖도록 선동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이고니온에 계속 머물면서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이고이온 사람들은 유대인들 편에 선자와 사도들 편에 선자들로 나누이게 되고 유대인 편에 선 자들이 관원들을 앞세워 사도들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을 떠나 루가오니아의 두 성인 루스드라와 더베, 그리고 그 근방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이렇게 선교해야 합니다. (행 14:1-7)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행 14:3) 화창한 봄날에 사람들은 산으로 들로 모여들어 따사로운 봄볕을 만끽합니다. 산마다, 공원마다 많은 사람들의 가벼운 발걸음과 즐거운 웃음 소리가 가득합니다. 특별히 이러한 봄날에는 날씨도 좋고, 길거리에 사람들도 많아 전도하기에 참 좋습니다. 본문은 바나바와 바울이 이고니온에서 선고한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버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고니온에서도 많은 결실을 거두었습니다. 물론 이곳에서도 유대인들의 강력한 박해와 핍박은 끊이지 않았고, 심지어 도피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까지 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바나바..
본문 및 다음 장(10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방 선교의 발전의 씨앗은 베드로 사도의 거룩한 정신과 사역을 통해 뿌려졌음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를 중심으로 발전된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제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국경 지역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갔습니다. 병든 자를 치유하고, 죽었던 '다비다'(도르가)(36절)를 살리며 소외된 천한 계층 사람의 이웃이 되어 준 사역이 바로 국경 부근에서의 베드로의 사역이며 급기야는 국경을 초월하여 이방 민족 고넬료마저 하나님의 백성으로 개종시킴으로써 '이방 선교의 주춧돌' 역할을 베드로 사도는 감당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야말로 '양무리의 본'(벧전 5:3)이 되라는 자신의 '사도관'을 그대로 실천함으로써 복음의 덕과 질서와 법을 기독교회에 세워 놓은 위대한 사..
본문에서부터 베드로의 해안 지방 선교가 시작됩니다. 본문은 첫 선교지인 '룻다'에서 일어난 사건의 소개인데 여기서 베드로는 8년 동안 중풍병으로 앓아누워 있던 '애니아'를 고칩니다. 그 결과 룻다에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이웃 지방인 '사론'에 사는 사람들까지 기독교로 개종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1.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가로되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요 14:12)라는 주님의 말씀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제자들에게 성취되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단 한번의 설교로 삼천 명(참조, 행 2:41)을 회개시켰으며, 더 크게는 오천 명(참조, 행 4:4)을 회개시키기도 ..
다메섹 도상에서 주를 만난 이후 새로운 신앙관을 갖게 된 사울은 예루살렘에 돌아와 복음 사역에 동참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울은 즉시 그 일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헬라파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적극적으로 덤벼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누구보다도 열심이었던 유대교를 배반하고 기독교로 개종한 사실에 대하여 더욱 큰 적개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더 이상 예루살렘에 머무를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사울은 형제들의 도움을 얻어 그의 고향 다소로 떠납니다. 그리고 그와 때를 같이하여 교회는 모처럼 평안과 성장의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같이 생각해 보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교회의 평안과 성장의 원인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
바울의 개종은 기독교가 유대교로부터 극심한 박해 가운데 있던 A.D. 40년경이었습니다. 이 시기의 기독교는 예루살렘 교회가 중심지로서, 선교가 유대 땅과 인접한 몇몇 도시들에서 은밀히 진행되고 있던 시절입니다. 이 시기에 바울의 개종은 기독교 선교의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귀한 종을 예비해 두셨던 것입니다. 개종한 바울은 엄청난 고난과 박해를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먼저 그는 이전의 형제요 스승이었던 바리새인과 유대교인들로부터 박해를 받았습니다. 또한 기독교 형제들로부터도 배척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을 구원해 주신 그리스도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담대한 신앙으로 자신이 구원받은 다메섹에서부터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본문은 이전의 살기등등했던 사울의 모습이 아니라 그 상황이 반전되어 새롭게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같이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그리스도와의 만남 1)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간 바울이 갑자기 별다른 존재로 바꾸어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사상과 신앙 또는 인식이 새로워진 것입니다. 다메섹에서 오기 전의 그는 흠없는 유대교의 신봉자로서 새로운 기독교, 즉 예수 믿는 자들을 없애는 것만이 참 하나님을 섬기는 길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이후에는 그의 그러한 신앙과 사상에 변혁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세계를 보는 새로운 눈이 열린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사람에게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그분과의 만남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전과는 다른 새..
신·구약 성경 전체를 통해서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종을 꼽으라고 한다면 바울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많은 위인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사도 바울은 우뚝 솟은 산과 같이 돋보입니다. 그는 기독교 초기에 많은 교회를 세운 자이며 더 나아가 기독교 신학을 정립한 사람입니다. 신약성경의 반 이상이 그의 손을 통하여 기록되었으며 그래서 신약성경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의 신학, 사상, 삶을 연구해야 할 정도입니다. 본문을 살펴봄으로써 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중생한 사람 1) 중생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축복입니다. 유대인의 관원이요 바리새인인 니고데모가 어느 날 밤 조용한 시간에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그처럼 화려한 직위, 직분을 가지고서도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데서 그는 이 세상..
베드로에게 배우는 신앙인의 올바른 자각 (행 9:19-43, 엡 4:1-16)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엡 4:1) 사도행전 9장은 그리스도인들의 핍박에 앞장섰던 유대교의 패기 만만한 젊은 지도자 사울의 회심과, 기독교의 핵심적인 지도자 베드로의 왕성한 활동을 대비하여 보여 줍니다. 아울러 그 모든 배후에 예수께서 계심을 부각시킴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편에서는 자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강조적으로 보여 줍니다. 그 가운데서도 본문은 베드로의 활약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요 초대 교회의 수석 사도답게 베드로는 예루살렘 전도에 만족하지 않고 온 유대지역을 순회하며 성도들의 믿음을 견고케 하고, 병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